보통 나는 아이가 깨기 전 집을 나선다. 친정 부모님께 아이를 데려다주는 일은 친정집 근처의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수 있는 남편의 몫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는 남편에게 아이와 관련해 전달할 것들이 있어 출근준비를 마친 후 침실에 잠시 들렸다. 아이가 깰까 남편에게 속삭이며 말하던 중 엄마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뒤척이며 깬 아이의 동그란 눈과 마주쳤다.
난 아이에게 주말처럼 환하게 웃으며 굿모닝이라고 아침 인사를 했다. 회사에 다녀오겠다고, 저녁에 보자며 손인사를 건네고 나오려는데 현관문 너머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자지러지듯 들려왔다. 돌을 갓 지난 13개월짜리 아기가 받아들이긴 어려운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찢어질 듯 높아지니 출근 그까짓 거 좀 늦게 하면 무슨 대수인가 싶었다.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뒤로 하고 아이 이름을 부르며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섰다. 아이 울음 사이로 우렁찬 남편의 짧고 굵은 외침이 들려왔다. "그냥 가!" 내가 다시 들어간들 그대로 머무를 수 없으니 상황이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아는 것이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문을 닫고 다시 나왔다. 이 잠깐의 돌아섬과 망설임 때문이었는지 난 오늘도 횡단보도 건너에 도착한 셔틀버스를 바라보아야 했다. 또 다음 버스를 한참 기다려야겠구나 싶었을 때 횡단보도의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었다. 신호 대기에 걸려 멈춰 선 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장화 신은 고양이의 그 눈빛으로 버스 기사님을 바라보며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넜다. 기사님은 감사하게도 나의 간절함에 답을 주셨다. 나는 재빠르게 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 회사로 가는 버스가 아니었다. 조급해진 마음이 시야를 흐려놓았는지 지명 뒤에 붙은 회사 이름을 버스가 출발하고서야 발견했다. 의자에 기댄 채 멍하게 유리창을 응시했다. 버스는 나의 황망한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쌩쌩 달려 나갔다.
내가 잘못 탄 게 비단 이 버스뿐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쁠수록 내가 가려는 목적지를 점검해야 하는 것을, 요즘의 나는 어떠한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살다 보면 언제나 옳은 선택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잘못 들어선 길에서 털썩 주저앉지 않고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 돌아서는 것도 용기이고 능력이다. 과연 나는 어떨까? 당장 다른 회사로 달려가고 있는 이 버스를 언제 내려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