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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성 Apr 23. 2022

코드네임 밤

이야기의 시작


"그 놈의 문제가 뭔지 아나?"

초로의 노인이 뒷짐을 진 채 오만하게 물었다.

노인의 왜소한 등을 감히 바라보지 못하는 중년 사내 한명이 우물쭈물 답을 망설인다.

"쯧쯧..."

혀를 찬 노인이 사내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간다.

"야망이 없어. 공허 그 자체지."

"어르신, 야망이 없는게 어찌 문제입니까? 오히려 약점이 없다는 의미가 아닐런지요?"

사내의 질문에는 존경을 넘어서 두려움까지 내제된 공경이 담겼다.

"한번도 지켜본 적이 없는 인간이다. 태어나 지금까지. 그저 망가뜨려 본 기억만 있는게지. 지켜본 적이 없는 자는..."

노인이 등을 돌려 중년사내를 본다.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빛을 고개도 들지 않고 감으로만 읽은 사내는 읍소하 듯 더욱 머리를 조아린다.

"뭐든지 쉽게 놓아버리지, 잡으려고 들질 않아. 그게 인간에게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나약함이지."

"인간이, 인간으로서 강할 수 있는 것은 야망 때문이란 의미신거지요?"

노인의 눈에 만족스러움이 깃든다.

"탐욕, 열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언가를 누리고, 누리는 것을 지켜낸 경험이 많아질 수록 인간은 강해지는게야.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지."

중년사내는 노인의 말에 무조건 동의한다는 듯 두 손을 포개어 잡았다.

"네. 잘 알겠습니다. 어르신."

"개에게 인격을 부여하지 말게. 개는 개로 두어야 하는 것이야. 그래야 계속 주인을 섬길 것 아닌가?"

"..."

사내는 또 다시 답하지 못했다.

노인이 하고자 하는 말을 명확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코드네임 밤, 노인의 더러운 뒷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심부름꾼에 대한 이야기다. 중년사내가 그토록 노인을 두려워하면서도 쉽게 알겠노라 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심부름꾼이 자신이 지극히도 아끼는 양아들이기 때문이다.

"왜... 답이 어려운가? 놈이 사람답게 살길 원하는게야?"

서슬퍼렇게 낮아지는 노인의 목소리에 중년사내가 입술을 깨문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입 안에 피가 고여온다.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떨리는 목소리에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조금의 반항심이 깔려있다. 지독한 두려움으로만 노인을 대하던 중년사내였기 때문에 그 반항심이 쉽게 노인에게 들켰다. 

"다음 외출을 기다리게. 나가보지."

단호하고 짧은 축객령에 중년사내는 의아함을 느낄 새도 없이 깊은 인사를 전하고 그들이 대화를 나누던 서재를 떠났다. 중년사내가 떠난 적막한 서재 안. 노인이 혀를 찬다.

"끌끌... 뜨거운 물에 담글 때가 된게야."

큰 창으로 쪼개어 떨어지는 따뜻한 햇살과 어울리지 않는 살기어린 말이었다. 고저도 없고 감정이 담기지 않은 말이었지만 노인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기 때문에 느껴진 살기였으리라. 노인은 자신의 허락도 없이 무언가를 지켜내야 겠다는 의지를 품은 자신의 수하를 진심으로 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게 노인의 인생이었고, 자신의 것을 지키는 방식이었으니까. 

노인은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단조로운 연결음이 한번을 채 넘어가기도 전에 두꺼운 음성이 들려온다. 전화 연결음 만큼 단조로운 목소리다.

"네. 전화받았습니다."

"한상무가 변했군. 지키고 싶은게 생긴게야.."

잠깐의 정적. 하지만 답은 단호하다.

"처리하겠습니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 조용히 보내고 싶군."

"밤은 어떻게 할까요?"

"아까운 칼이긴 하지."

"네."

"허나 손잡이가 부러진 칼을 쓰다간 내 손도 베이고 말테지."

"잘 알겠습니다."

뚝.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결단은 이미 내려졌다. 노인은 그 생에서 결정을 하고 번복을 하거나 후회해본 적이 없다. 어차피 한 손에 모든 걸 쥘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놓아야 쥘 수 있다. 더 크고 좋은 것으로. 

노인, 대한민국 최정상 기업 UB그룹의 회장이자 수십년 전부터 글로벌 재계순위 5위 내에 있다는 김경민 회장의 비밀서재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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