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이란 쉽게 잊혀지는 것인가?
나의 마지막 수업을 향해 가며 사실 매일이 마지막 수업이라는 것을 떠올리려고 합니다.
이런 결심을 한 지는 사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학기 초에는 질병 휴직을 한 탓에 새롭게 바뀐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익히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상하게도 학교에 다닐 적에는 지루하리만치 쉽게 변하지도 않던 업무와 분위기가 내가 없는 단 1년여 기간 동안 여러모로 달라졌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더라구요. 꼭 내가 없을 때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처럼 생각될 지경이었습니다.
보통 학기 초인 3월은 교사들에게는 고난의 달이기도 합니다. 일 년간의 농사를 짓기 위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준비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조회하고 수업하고 업무하고 종례하는 일을 말 그대로 해치우며 보냅니다.
더구나 저처럼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경우는 방과후수업에 야간자습 지도까지 하다 보면 ‘교사는 체력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50살, 60살이 될 때까지 강건하게 꿋꿋이 자신의 역할을 해내시는 선배 교사들을 향한 존경심이 샘솟곤 합니다.
거기에 담임을 맡게 되는 경우는 그 모든 일에 더하여 새롭게 나의 반이 된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로 라포를 형성하고 알아야 할 사항을 점검하기 위한 학기 초 상담이 이루어집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쨌든 꼭 해야 하는 중요한 만남입니다만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사람에게 많은 집중력과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 중의 하나인 듯합니다. 좋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공감 표현과 적절한 질문과 기록을 남기다 보면 정말 몸에 에너지라고 불릴 그 어떤 것도 남김없이 불태우고 퇴근을 하게 되죠. 집에 도착하면 말 그대로 허물을 벗듯 옷과 그날의 피곤을 벗어던지고 잠만 잔 상태로 다음 날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지난 3월을 반추하다보니 그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낸 나를 비롯한 많은 선생님들이 대견하고 장하게 느껴지네요. 물론 선생님들마다 자신의 스타일이 있으니 어떤 분은 새 학기의 시작이 에너지를 끌어모으고 활력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아! 3월의 기억만 정리하는데도 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아질 줄 몰랐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가 올 때면 매일이 마지막 수업이란 생각으로,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마지막이란 다짐으로 나를 향해 응원을 보냅니다.
어떨 땐 물흐르듯 매끄럽게 흐르는 수업도, 어떨 땐 뭔가 찝찝한게 남아서 뒤끝이 이상하게 남는 수업도, 어쨌든 인생의 큰 결심을 한 순간부터 저에겐 마지막 수업을 향한 매일의 마지막 수업이 되었네요.
오늘도 아이들은 주말을 격하게 보내고 온 탓인지 생기 없이 축축 처져 있습니다. 이럴 때 코미디언처럼 멋들어진 유머를 날리며 애들을 숨넘어가게 웃겨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저에겐 그런 재능은 없는 듯합니다. 만약 그런 재능이 있어서 수업 이외에도 함께 웃고 농담을 즐기고 하며 유쾌하게 수업을 진행했다면 아마도 정년까지 계속 학교에 남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6월의 시작은 3월을 되돌아보기로 문을 열였습니다.
이 열린 문으로 쫑알쫑알 저의 지난 20년의 수업일지가 시작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