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센티아 Dec 23. 2021

차라리 까칠한 아줌마로 살테다

호구 엄마의 굳은 다짐

나이가 들어 다양한 이해관계의 국면에 새롭게 진입할때마다 우리는 태도에 단호함과 까칠함을 한겹씩 입게 되는 모양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영역이 무참히 침범당하거나 결코 온전하게 자신을 지키며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오랜 경험

과 직관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이 가끔씩은 받아들이기에 참으로 씁쓸하기도하고 불편하기 그지없기는 하다. 하지만 빼도 박도 못하게 그것은 냉험한 현실인것이며, 한없이 나를 내어주어 무참히 범해져도 상관없다거나 희생시킬요량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도리어 아이들이 싫어졌다. 불특정 아이들에게 까칠해 졌다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여덟살짜리 아들이 장성하여 손주라도 안겨주게될 그 어떤 아득한 시점이 오지 않고서야 이런 성향이 바뀌어질 수 있을까 싶은 심정이든다.


애 엄마가 되기전엔 아이들에 대해 나는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이는 개들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아이와 반려동물 만큼 우리에게 천진하고 무방비한 미소를 짓게하는 존재들이 어디 있겠는가. 지극히 평범한 나에게 그러니 당사자로 그들과 사건에 함께 얽히지만 않는다면 조금도 까칠하거나 냉담해질 까닭이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그 이해 당사자가 되고보니, 아이들이란 존재는 이제 내게 더이상 유니콘 같은 환영이 아니라 생생하게 무시무시한 현실이며 당면과제가 되고 말았다.

아이들이 귀엽지않냐고? 물론 매우 귀엽고 사랑스럽다.

거리를 아주 조금만 두고 지켜보면야 아이들만큼 마음이 이끌리는 매력적인 생명체들이 세상에 달리 있으랴!


하지만 그런 아이들이 동시에 무척이나 성가시고도 피곤하냐고?

두말하면 잔소리지 무슨.

지금은 내 인생 시름의 가장 큰 부분들은 적잖이 아이들 문제로 고달프고 애닳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저 애들과는 영영 엮이고 싶지 않을 뿐이다. 하나 있는 내 자식만해도 겨우겨우 감당해내고 있는데, 옆집아이, 반 아이, 동네아이까지는 내 역량엔 그야말로 투머치다. 아무래도 나는 아이들을 감당할 수 있게 애당초 설계된 인간이 아닌 듯하다. 언젠가 이 사실을 아들에게도 솔직하게 터놓고 고백해야 하겠지만, 아니 이미 어느정도 짐작은 하고 있을테지만.


사회성 흘러 넘치는 아들은 태생부터가 나와는 달리 유독 사람을 좋아했다. 그건 그냥 아주 이른 시기부터 딱 보면 그냥 알 수가 있는 성향이었다. 아마도 나는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조차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성격에 어울리게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부터 우리 집은 서서히 이를테면 아이들의 아지트 엇비슷한 곳이 되어갔다. 물론 제딴에도 자각은 있어 네명 이상의 친구를 한번에 부르는 일까지는 없었으나, 하교길에 한 두명씩 친구를 데리고 오는 일이 어느덧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물론 나는 아주 불편하고 껄끄러웠다. 물론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겉으로는 반갑게 아이들을 맞아주고 간식도 챙겨주고 하다보니 어느덧 아이들에게 조차 마음씨 좋은 친구 엄마로 낙인 찍혀버린 듯 하다. 한마디로 애들 눈에도 만만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는 이 연륜에 눈치가 어느 정도는 된다고 착각하고 사는지, 그 실상이 내 뇌리에 제대로 자리잡기까지는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아니, 아마도 어느 정도는 견딜만 했었거나, 그도 아니면 어린 시절 정작 나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호스트로서의 대리 만족감에 취해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나는 친구를 거의 집에 초대한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한 두번  친구들을 부른 것은 아직 철이 없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덕분이었고, 이후로는 가난에 찌든 살림살이를 들쳐보여줄 의도도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우리 집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는게 은근히 뿌듯해보였고, 연신 좋다고 순수하게 인정하는 천진한 아이들의 칭찬이 나도 싫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아무 실익도 없는 근자감에 취해 아이들이 한번씩 다녀갈때마다 쑥대밭이 되는 집안을 정리하고 또 정리하는 수고를 마다 않았던 것이 어쩌면 나 스스로를 수렁으로 이끈 근원이었으리라.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호의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집에 몰려들게 되어있다. 나 역시 학창시절 줄기차게 반 아지트처럼 친구들과 모였던 한 친구의 집이 딱 그랬다. 적당히 말끔한 환경에 무엇보다도 그 어머니가 우리를 참 격없이 대해주셨다. 철부지 우리들은 그 호의를 상당히 악용한 적도 많았다. 온갖 사춘기 시절의 금기된 딱지들을(?) 우리는 그 집에서 떼었다.


현재로 돌아와 그동안의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니, 아들의 친구들에게 나는 깨닫지 못한 사이에 호의적이고 허용적인 친구 엄마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죽는 것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나의 철학에 의하면 아무리 아이들이라해도 남의 아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참견을 하거나 혼을 내는 것은 영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다보니 아이들끼리 우리 집에서 자유롭게 노는 것을 방치 및 방관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근본 적인 내 삶의 방침은 아이들 일에 될 수있으면 참견하지 말고 스스로들 해결할 수 있게 기다려준다(?)거나 내버려 두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렇게 아름답고도 순수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이 작은 악마들은 딴에는 남자아니랄까봐 크고 작게 끊임없이 다툼과 경쟁을 벌였다. 그리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일단 우리 집 지붕 하에서 벌어지는 한 모든 일은 다 내 책임이 되고야 마는 것이었다. 어지럽히고 가끔 물건을 절단 내는 정도야 질끈 눈감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내 생활 영역과 시간이 침범을 당한다는 것이었고, 아이들간의 모든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내가 다 감당해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카리스마 넘치는 엄마 타입이 아닌지라, 아이들은 기본 상냥해뵈는 내 말을 우습게 여기곤 했다. 살면서 이런 엇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어봤던지라 뒤늦게나마 감이 오자, 나는 태도를 일변하기로 결심했다. 체격이나 태도에서 자연스러운 카리스마나 위엄이 뿜어나오지 않는 내가 그나마 방어기제로 택하는 분위기는 까칠함과 무관심이다. 틈을 주지 않기위해 호락호락하게 보이지 않고 상대방에게도 어느 정도 긴장감을 유발 시킬 수 있게 하는 기재는 그것 밖에는 없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도 아니고, 이건 뭐 사람 좋아보이거나 조금이라도 허술하고 약해보이면 어째서 인간은 항상 그토록 태만하고 무례해 지는 것일까? 결국 우리 안의 동물성은 철저하게 긴장하고 자각하지 않는한 자연히 그렇게 되는 모양이다. 어린 아이들조차 그걸 아니 말이다. 아니 아이들이야말로 아직은 더 본능에 솔직하고 가까운 존재라 더욱 더 그런지도 모른다.


오늘 최악의 상황을 맞아 나는 이제 이런 내 결심을 더욱 더 공고히 다지고 행동으로도 드디어 실행을 해냈다.

아들이 쪼로록 하교시에 데려온 두녀석이 말다툼을 벌이다 삐졌는지 어쨌는지, 아들과 한녀석은  놀이터에 나가 놀겠다고 나가버렸는데, 나머지 다른 녀석은 우리 집에 남아서 계속 혼자 색종이 접이를 하는 것이었다. 말도 안되는 것들로 항상 지지고 싸우는 어린내들의 싸움 원인은 내겐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한 시간이 넘게 우리 집 거실에 버티고 앉아서 제 집처럼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당당한 여덟살 짜리 옆에서 불편하고 초조해 책장의 활자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던 기절하기 직전의 나를 발견했다.


" 00는 나갔으니, 같이 나가 놀거나 아니면 집에 그만 돌아가는게 어떻겠니?"

라고 타일러보았지만, 자기는 3시까지 우리 집에서 있다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태연하게 핸드폰으로 로블록스를 하고 있었다.


그때 순간적으로 나를 스치고 지나갔던 그 싸늘한 느낌을 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잘 전달이 될까?

아 내가 그동안 이 아이들을 너무 편하게 해줬구나!

나도 모르게 또 무방비 상태로 마음의 호구짓을 하고 있었구나.


글쎄 올바르고 정확한 표현인줄은 잘 모르겠다. 철없는 어린아이들과 유치하게 기싸움을 벌이며  밀땅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마는, 아마도 진짜 본질은 대상이 아이들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또 지키고 싶은 나만의 영역에 대한 선을 흐리며 진짜 원하는 모습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이리라. 상대가 아이고 어른이고간에 아니면 개든 고양이든 간에 내 감정의 불편함과 찝찝함에 예민해지겠다고 결심하고 또 결심해왔건만.

Opps i did it again

나는 또 방심한 채 나 스스로를 덫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나는 진정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쾌적하고 편안한 집안 환경을 원하며, 애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대로 쓰고 싶다.

내 자식도 아니고 이제는 그 자식의 친구 애들한테까지 시달려야 하는 시간은 사절이다.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못되고 신경질적인 엄마일까?

아니.

그 아이들의 집이 아니라 바로 우리 집이 이토록 아지트가 되어버린 이유는 대체 뭐지?

그건 많은 부분 바로 나 자신 때문이다. 내가 부른 파국이다. 처음부터 선을 명확하게 하거나 규칙을 정해 두었으면 좋았을텐데 뭘 몰라서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후하게 대해주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본의아니게 성가셔졌고, 고마움이나 예의도 모르는, 아니 모를 수 밖에 없는 나이의 사내 아이들에게 학을 떼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에 대한 원래도 별로 없던 정내미는 더욱 나가 떨어져 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 세상이 나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아우성 치며 탓할 일이 아니요. 바로 내 스스로의 방침없는 의식없는 행동과 태도가 언제나 결과를 초래했음을 알아야 할 터.


이번 일을 계기로 아마도 나는 조금더 까칠한 아줌마가 될 듯하다. 반드시 그래야 겠다. 그것이 나와 내 집과 내 시간과 정신 건강을 보호하는 길이다. 현대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더이상 50년 전과 같은 한국의 시골 정서로는 버텨낼 수가 없다. 온 동네가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이라는 개소리를 믿는 사람은 엄마라면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내 새끼는 지독한 외로움에 몸서리 치고 경력도 기회도 다 포기하면서 꾸역꾸역 내가 키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자원봉사자도 뭣도 아니며 그저 행복한 이기주의자로 살고 플 뿐이다.


그 아이들의 부모를 원망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들은 이런 내 마음과 상태를 알 길도 없을 것이고 자기 자식을 굳이 우리 집에 보낼 의도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친구 좋아하는 우리 아들과 이 모든 사태에 대한 내 역량을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던  어리석음만이 원인일 뿐.


앞으로의 살아갈 날 동안 나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얼마나 더 까칠해져야 할까?그리고 어디까지 감당해내고 어디에서 선을 그어야 할지 알 수 있을까? 가봐야만 알 수 있을 그 길에 대한 생각은 모두 여기에 털어내고 나는 또 현실로 복귀한다.


엉망진창이 된 집을 청소해야 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 낳고 산다는게 이런건지 몰랐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