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그린 자화상을 들여다보는데
살갗에서 비린내가 난다
밥은 먹고 산다고 한다
어디 한군데 눌러앉거나 적응하지 못한 역마살
남을 말로 속이기보다는
정직하게 몸으로 돈 벌 수 있는
일용직 막노동이 그리도 좋았나!
일당은 주는 대로 받았기에
고용주가 제일 좋아하는 천진한 얼굴이
어쩌다 한 번씩 주둥이 뻐금거린다
일없으면 낚싯대 들고
낚싯대 들면 일 안 하는
어제와 오늘은 늘 그날 같다며
물고기 그려 놓고 제 얼굴이라 우기는
◇권분자= 『월간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형상시학회 회원. 시집 「너는 시원하지만 나는 불쾌해」 「‘수다의 정석」 「엘피판 뒤집기」 소설집 ‘출소를 꿈꾸다’가 있음.
<해설> 시인이 바라보는 시 속의 대상은 세상의 한구석이다. 우리의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권분자 시인은 시와 소설을 넘나들면서 시 속 화자일 법한 낚시꾼을 데려와서 독특한 성향의 또 다른 사회구성원에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속의 낚시꾼? 혹 나를 두고 쓴 시는 아닌가? 흠칫 놀란다. 오래 낚시를 못 가고 있으면 왠지 물고기 비린내가 손바닥에서 나는 것 같은 나도, 꾼은 꾼인가 싶다. 아무튼 시 속의 꾼은 구속받지 않는 인간이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인간의 형태이다. 그러나 왠지 석연치 않은 것은 “낚싯대 들면 일 안 하는/ 어제와 오늘은 늘 그날 같다며/물고기 그려 놓고 제 얼굴이라 우기는” 이 인간은 사회 순응형인 듯, 하지만 나 아닌 타자에게도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그런 꾼으로 느껴지는 건 뭘까? 그런 꾼을 두고 시인은 직접적으로 말 못할 불만을 시로 형상화한 것은 아닐지?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