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를 근간으로 하여 교육철학을 성립한 마르틴 부버 전문가(?) 강선보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강선보 교수는 인터뷰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인성교육의 성패에 따라 우리 사회는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로 전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AI를 활용하는 주체자가 되는 인간이 만약 인성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에 의해 작동될 경우 비윤리적이며 교육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에 대하여 우려한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한 가치가 부여된 인성교육은 학교만의 노력으로 일구어질 수 없다. 도리어 인격형성의 기반이 되는 가정에서의 개입이 더욱 부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출처: '신의 한수' 아닌 AI 도움…13살 천재 바둑기사 징계 (2020.11.23, 연합뉴스)
얼마 전 뉴스에서 보도된 국내 현역 최연소 바둑 프로기사인 13살 김은지에 대한 사건도 현대사회에서 가정에서의 인격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된 사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부정행위 사건으로 이슈화되기 전까지 김은지 학생은 2020년 만 12세의 나이로 입단하여 천재 바둑 소녀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바둑 국가대표로도 활동한 후 얼마 가지 않아 AI를 활용한 부정행위로 1년 간 자격정지 처분을 받게 되었다. 김은지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도된 바가 없어 명확한 진실을 알 수는 없지만 어린 나이의 학생이기에 성공을 위해 비윤리적인 행위를 일삼게 된 배후에는 자녀를 영재로 만들고 싶은 부모의 가치관과 양육태도가 일조하지는 않았을 까하는 조심스러운 추론을 해보게 된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작년 이맘때 대국민적으로 열광하였던 드라마『스카이 캐슬』이나 현재 방영 중인 『펜트하우스』 등에서 비추어본 한국 부모가 가진 비뚤어진 교육열을 생각해보았다.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학부모들은 한결 같이 교육을 그저 계층 유지의 수단 또는 계층이동의 사다리로 전락시키는 현상을 촉발하고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은 아동,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자녀로 하여금 실존적 존재로서의 개인을 상실하게 하여 비주체적인 삶을 살게 하기에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드라마 "펜트하우스"중 부모의 비뚤어진 교육열로 인하여 악행을 더해가고 있는 찬서진-하은별 모녀
주체성을 상실해버린 아동, 청소년들은 스스로와의 관계 맺기에 실패한 채,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쉽사리 성공적인 관계 맺기를 형성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부버가 이야기하였듯 타인과의 만남에서도 ‘나-그것’의 관계로 성립된 만남을 맺게 함으로써 타인을 경쟁상대로 받아들이거나 경쟁의 체계 안으로 밀어 넣는 비윤리적 현상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람과의 피상적인 만남에서 우리는 결국 극렬한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일례로 학교현장에서는 교사가 앎이라는 세계에 대하여 학생의 우위를 차지하려고 애를 쓴다. 이로 인하여 교사와 학생은 서로 간의 소통을 토대로 하는 존재지향적인 관계가 아닌, 대입이라는 목표 하에 서로를 수단시 하는 상황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가정에서도 학교부적응 학생일수록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무관심하고 회피하는 부모를 보면서 또 다른 좌절감과 외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인성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담론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나는 이 같은 문제는 실존주의적 접근을 토대로 한 인성교육 실천을 통하여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과거 존속살인사건으로 잘 알려진 이은석의 사건에서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이 필요조건이 되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맺음의 실패가 불러온 처참한 결말을 목도한 바 있다. 이는 스스로와의 관계 맺기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삶에 대한 향유 욕구’를 억압당함으로써 야기된 비극적인 결말이라고 설명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살인사건에 있어 부모의 (동일자의 체계 안으로 모든 타자들의 타자성을 포섭하려 하는) 전체주의적 양육방식의 태도만을 문제 삼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사례는 가정과 학교를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인성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데 교육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인성담론의 대안 중에 레비나스의 타자철학을 적용하고자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윤리가 존재론을 앞선다고 주장한 레비나스의 이론을 다룬 책
첫째, 4차 산업혁명시대가 도래한 지금의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은 앞으로 인공지능 로봇과 경쟁하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이에,새로운 변화에 대한 도래와 함께 새로운 윤리적 고찰 역시 요구되기 때문이다. AI가 제공하는 교육에서 어느 하나만을 딱 떨어진 유일한 정답으로 간주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면, 이 같은 유일한 기준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해석하려는 전체성의 문제가 다시금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지식만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에 대한 문제의 실마리는 레비나스의 타자철학을 통하여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레비나스가 줄곧 비판하였던 동일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타자를 다른 자아나 그저 함께 존재 세계 속에 살아가는 동료로 한정 짓게 된다. 하지만, 집합성과 전체성에서 벗어난 개체로서의 독립된 자아인 타자를 수용해주는 교육이 선행된다면, 이는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들과의 윤리적이며 인격적인 관계가 가능한 공간을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둘째, 코로나19 팬데믹이 몰고 온 참혹한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갖고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감염병이 확산되는 상황에서는 타인을 그저 나에게 위험을 끼칠 수 있는 무서운 존재로만 대하기에 급급해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 상황에 앞서 타인 또한 그의 몸, 그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타인을 무작정 나에게 3인칭적인 대상으로 치부하기 이전에 내가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사람으로 먼저 받아들이고 그렇게 대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대입 성공을 위하여 내가 밟고 넘어서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나 아닌 다른 존재로서의 타자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길러져야 한다. 이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며 타인의 얼굴을 만나도록 이끄는 교육환경의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셋째, 주체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내 속에 있는 타자들을 먼저 인식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또한, 나의 몸, 나의 영혼을 만들어낸 주체가 내가 아님을, 나는 그저 ‘주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부재의 현존 경험에서 드러나는 존재로부터 존재자로, 존재자에서 타자로 이행하는 ‘존재론적 모험’의 과정을 학습할 필요가 있다. 이는 나와 타자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해보도록 하는 레비나스의 철학을 통하여 적용가능하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판단과 행동이 가능한 자유를 지닌 개체이면서도, 동시에 주어진 문화 속에 내던져진 존재이기에,존재론적 모험은 나라는 존재와의 관계 맺음의 방식에 대해 반추해보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