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모유 수유를 중단한 이후부터 아이는 젖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엄마가 주방으로 향하는 발소리부터 분유통을 여는 소리와 젖병 소독기에서 젖병을 꺼내는 소리까지 아이는 늘 귀 기울이고 있었다. 엄마는 그 소리를 상상해보려고 갖은 노력을 했는데도 어떤 소리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기껏해야 ‘달그락’ 거린다고 할까. 집으로 찾아온 산후조리 선생님이 초보 티 팍팍 내던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이가 젖병을 빨 때 소리가 나요.”
“공기 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요.”
“좀 더 젖병을 기울여 주세요.”
아이를 대하는 자세는 전문가 그대로의 모습이었지만 청각장애 엄마를 대하는 태도는 선생님도 어찌할 줄 몰랐던 것 같았다. 눈대중으로, 선생님의 입 모양을 보면서 아이가 젖병을 빨 때마다 공기가 생기는 이유와 젖병을 빠는 소리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아들 예준이는 유난히 분유를 먹고 나서 잘 토하는 편이라 엄마와 선생님, 모두의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트림을 시켜도 곧잘 게워내 하루 동안 바꾼 옷만 해도 산더미였다. 그러다 보니 젖병을 빠는 아이의 모습을 하루 내내 집중해서 봐야 했던 불편은 이내 아이가 분유를 다 먹고 난 뒤 배부른지 행복한 미소를 보여 주는 것으로 충분히 위안받았다. 아이가 젖병을 빨 때마다 생기는 공기가 식도를 넘어가 위에 가득 찼을 때 가스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구토 현상이 생긴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늘 노심초사했던 그때의 엄마는 이제 아이의 일상을 함께 했던 젖병과 분유통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어쩌면 이 일이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이별의 첫 번째 단계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만 엄마의 우려는 기우였던 걸까.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지 오랫동안 보채거나 칭얼거리지 않았던 아이에게 새삼 고맙기만 하다. 젖병을 잘 빠는지 열심히 듣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아닌 아이의 입 모양과 분유를 흘리지 않고 잘 넘기는지 더욱 세심하게 들여다보던 그때의 엄마는 지금에서야 젖병을 만지작거리는 아이에게 눈을 맞추며 말한다.
“ 서툰 손길에도, 금방 털고 일어날 줄 알던 네가 어느새 이별을 경험하네. ”
“ 괜찮아,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거야. ”
그 후 예준이는 젖병을 더 이상 찾지 않고, 빨대컵과 금세 친해졌다. 자연스럽게 만남과 이별을 체득하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 엄마는 아이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을 정리하며 ‘비움’을 배웠다. 앞으로 아이와 함께할 순간을 담기 위해서 지나간 추억을 비울 줄 아는 ‘태도’가 필요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의 마음결을 나눠야 했던 것처럼. 그렇게 젖병 빠는 소리는 나만 몰라도 괜찮았다. 엄마의 걱정과 다르게 아이는 스스로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젖병을 빠는 소리를 스스로 알았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