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7. 초보의사일지
새벽 1시 30분에 환자가 왔다. 할머니인데, 귀에 벌레가 들어갔다고 하면서 소리 지르고 계셨다. 이경으로 귀를 보니 살짝 보이는 벌레...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집에 있는 벌레도 못 잡아서 맨날 종이컵으로 덮고 버리는 나인데, 새벽 1시고 "저는 못하니까 옆에 이비인후과 가보세요" 하기엔 섬이라 너무 밤이라 배도 안 뜨고, 어떤 의료시설도 없는 환경에서 유일하게 할머니의 귀에서 벌레를 빼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라는 생각을 하면 항상 뭐라도 시도해보게 된다.
근데 학교에서 '귀에 벌레가 들어갔을 때' 같은 수업은 하지 않으니까.. 어떻게 해야할까 하다가 최근에 읽은 웹툰에서 이 내용을 봤던 생각이 났다. 그래서 바로 옆에서 소리를 지르고 계신 할머니를 두고 웹툰을 켜서 두 화 정도를 정독했다. 보호자가 있었으면 엄청 뭐라고 했었겠지만, 방법이 없었다.
귀에 알코올이나 물이나 참기름 등을 부어서 벌레를 익사시키고 빼내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고 빼냈더니 벌레가 툭 떨어졌다. 떨어진 벌레를 화나서 마구 밟는 할머니를 보면서 얼마나 아팠으면 했다.
고작 의대 6년 다니고 갓 의사된 뒤에 이렇게 의료의 최전방에서 모든 환자를 봐야 하니 힘이 들긴 하다.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그때마다 인턴 동기들이나 선배들, 같이 일하는 형에게 묻지만 새벽 같은 때에는 그것조차 너무 힘들어 완전 혼자 해결해야 할 때면 정말 막막하고 누군가 확실히 알려줄 사람이 있는 수련받는 동기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나도 하나도 몰라서 패닉인데 환자한테는 다 아는 척 월드클라스 의사 인척 해서 안심시키는 것도 힘들고 그래도 어찌어찌 항상 해내고는 있다. 심근경색, 경운기에 깔림, 화상, 칼에 찔린 상처 같은 큰 질환에서 귀에 벌레 들어감, 혼자서 가시 박힌 거 안 나와서 빼 달라는 사람들까지... 이렇게 보다 보면 성장하기는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