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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순 Jan 07. 2020

아들 신(神)

기다림은 아픔이었네.

 아들 신(神)

                                                               이 영 순

     

     

     

  전화가 온다. “별일 없냐고?” 궁금해서 전화했단다.

 “응. 난 잘 지낸다고.”

 내 이름 석자를 무심코 쓰듯이 대답한다.

엄마가 그리운 이가 되신 후 가끔씩, 오빠가 전화를 한다. 엄마가 계실 때, 우리 삼 남매는 십 년이 지나도 서로 전화할 일이 없었다.

“이번 주 금요일에 우리 만나자.”

 “금요일에?”

 “너도 한 시간 오고 나도 한 시간 가서 천안에서 보자.”

 “알았어.”

 “점심 전에 언니 집에 가 있을게.”

 “그날 봐. 오빠~.”

 우리의 전화는 끝이 난다.

     

 싱크대 쪽으로 간다. 커피 두 봉지에 넉넉히 물을 붓는다. 소파가 아닌 발코니에 두발을 걸치고 앉는다.

     

엄마에게는 유일하게 믿는 아들 신(神)이 있었다. 어떤 종교보다도 거대한 종교였다. 그 신(神)만이 가져야 했고, 먹어야 했었고, 사랑받을 수 있었다. 당신이 이뤄낸 많은 물질도,  오직 그 신(神)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엄마의 마음이었다. 한 번도 오지 않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배고파했고, 목말라했다. 아니, 그것이 무엇인지 맛조차 본 기억이 없다.

지금도 알지 못하는 그 마음은 단순히 사랑받고 싶은 것이었을까?

     

 신(神)의 문지기는 당연히 엄마였다. 신(神) 앞으로 나아가서 엎드릴 자는, 새언니와 조카들 세 명뿐이다. 아무리 아들 신(神)의 ‘절대 맹신자’가 되고 싶어도, 문지기의 차단막은 내가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神)께 충성, 맹세할 기회를 달라고 애원해 봐도 기회는 바람일 뿐이었다. 바람은, 아픔이 되었다. 너무 아팠다. 문지기는 두려움이었다.

     

 엄마는 그저 그리운 분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바라봐 주지 않는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은 기다려도 소용없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리워만 한다는 것은, 다시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립다는 건 아픈 상처가 남는 거였다. 상처는 멍이 되었다. 어느 날은 짙푸른 빛이었고 어떤 날은 핏줄 서린 자줏빛으로 변해 있었다. 기다림의 희망이 사라진 대가는 서러움이 되었다.

     

기다림을 이루지 못한 채, 엄마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그리움이 되었다. 기다려도 볼 수조차 없어진 당신은 ‘매몰찬 그리움’입니다. 저는요, 당신이 밉습니다.

     

 금요일. 날씨가 맑다. 햇살이 먼저 차 안에서 기다린다.

     

 언니는 2년 전,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오빠 차가 보이지 않는다. 키 작은 다육이들이 마당 가득 넘치게 있다. 담장 밑에, 얌전히 있는 그네. 어느새 어릴 적 꼬마가 앉아서 그리움을 기다린다. 곧 도착한다는 오빠의 전화가 온다.

     

언니가 근처, 한우식당으로 안내한다. 고기 좋아하니 실컷 먹으란다. 맛나게 먹을 생각을 하니 침샘이 바다를 이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삼 남매가 밥을 먹는다며 말끝이 흐려지는 서글픈 목소리가 식탁으로 떨어진다.

“그러게 처음이지?”(장벽으로 가로막고 서 있는 미운 엄마가 보인다.)

처음으로 삼 남매가 밥을 함께 먹는다면 누가 곧이듣겠는가?

오늘 헤어지면 각자의 거실에 태극기를 꽂고 기념하자면서 지난날 못 다했던 서러운 밥을 삼킨다.

     

체리를 먹는다. 올 들어 처음으로 먹어보는 체리 맛이 달다. 커피를 마신다. 오빠가 흰 봉투 두 개를 꺼낸다.

 “이게 뭐야?”

 “미안하다. 그동안 받는 것만 알았었다고. 엄마가, 부족함을 말하기도 전에  미리 채워주시니까, 그렇게 사는 줄만 알았다고. 부모님 재산은 나만 받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고, 세상 사람들이 다 나처럼 편하게 사는 줄만 알았었다고. 동생들 용돈 한 번 못 줘보고 살았다고, 또 미안하다고 말한다. 지난날은 내려놓고 앞으로는 잘 살아 보자고, 철없던 오라버니를 용서해 달라고 한다. 떠나신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고, 엄마가 무척 생각난다는 그리움의 목소리가 내 가슴을 휘젓는다.”

     

돌아오는 길. 씁쓸하다. 참 쓸쓸하다. 뒷자락에 끝없는 지난날이 따라온다. 이젠 그만 돌아가라고 외치고 싶다.

     

엄마가 세습하고 싶었던 물질. 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요. 마음을 굶주렸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내게 전달되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마음과 마음에는 다리(橋)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리(橋)는 엄마의 목소리 일거 같습니다. 엄마와 저는요, 목소리(대화)의 다리(橋)가 없었습니다. 당신과는 대화가 없었기에 서로의 해석이 틀렸을까요? 

'엄마!!! 저도요. 오빠처럼 그리운 엄마를 갖고 싶습니다'. 

     

거리에 녹색 물감이 뚝뚝 떨어진다. 아스팔트 바닥이 짙푸르게 젖어든다. 

     

도착해서 전화해야겠다. 그토록 바랐던 마음을 받았다고, 한 없이 바라던 기다림이었다고, 오빠가 대신해 준 기다림, 기다렸기에 그리웠다고.

     

저녁을 먹고 봉투를 열어 본다. 이백만 원이 들어있다. 

 

한 달도 더 흘렀다. 넉넉하게 담아준 그리움을 아련하게 가슴에 새기면서 그대로 흰 봉투 속에서 기다림을 본다.

     

 

     


     

     


     

어느 날, 처음으로 써본 글이다. 주제를 정한 것도, 계획한 내용도 아닌데 이렇게 한이 서린 마음으로 한 번에 주욱 써 내려갔다. 눈물 콧물 흘려가며 서러움의 글이다. 글이 이렇게 시원한 줄 몰랐었다. 속이 시원하다. 이 글을 읽고 언니도 울었다. 오빠도 울었다. 라디오 방송에서 읽어주는 사회자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서러움이 북받쳤다. 또 울었다. 오빠가 더 가슴 아파했다. 등을 돌린 채 아들만 바라보고 서 있는 엄마의 뒷모습도 이젠 또 다른 의미의 그리움이 되었다.(2017.8.20 방송을 탔던 글이다.) 



2020년 1월 7일.

해도 바뀌었는데 이틀째 겨울비가 내린다. 축축한 날씨 탓인지 아련하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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