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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Oct 23. 2023

내가 나를 챙기는 것

  문득 그런 날들이 있다.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무난하게 하루를 보내고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이유 없는 눈물이 흐르는 날. 갑작스러운 불안과 걱정, 우울과 슬픔이 거대한 파도처럼 덮치는 날. 계속해서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헤엄도 치지 못하고 망연히 더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기만 하는 날. 그렇게 물속에 잠긴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나만 제자리에 멈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아니, 제자리에 멈추다 못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 밀려 자꾸만 뒤로 멀어지는 것 같은 순간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일 년간 눈에 보이는 무엇을 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그런 순간들이 무수히 많은 점으로 찾아왔다. 가끔 점들은 모여 선이 되기도, 면이 되기도 했다. 입체감을 가질 정도로 모이면 며칠을 멍하게 보냈다. 나라는 사람은 뭐가 문제인지,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는지, 앞으로 뭘 할 생각인지, 어떻게 살아갈 작정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도 답을 하지 못했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는 잘만 던지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는 잘 꺼내지도 못했다. 그렇게 흘러온 시간들이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았고, 그렇게 살아온 지난날들이 내 발목을 잡는 것 같았다. 

  큰 회사에 취직해 승진하며 연봉을 높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자신을 꼭 닮은 아이를 낳고, 좋아하는 일을 잘해나가며 밝아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나는 왜 저렇게 하지 못하지? 나는 왜 겁이 많지? 나는 왜 예쁘지 않지? 나는 왜 잘하는 게 없지? 나는 왜 사랑하지 않지? 나는 왜?로 시작하는 끝없이 캄캄한 질문 속에 빠지면 어떠한 대답도 찾을 수 없어 계속 헤매기만 했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너는 참 긍정적이고 밝아. 조급하지 않고 여유로워. 그게 너의 힘이야. 아닌데, 당신은 나를 잘못 알고 있어. 나는 긍정적이지 않아, 오히려 비관적이야. 나는 우울하고 어둡고 불안하게 흔들려. 그런데도 그 말을 잡고 싶었다. 그게 나의 힘이라는 말끝을 잡아서 어둠 속을 헤쳐 나가고 싶었다. 

  나에게 아예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지금 기분이 어때? 요즘 몸 컨디션은 좋은 것 같아? 어디 아픈 데는 없어? 잘 지내? 괜찮아? 하는 질문들. 요즘은 이런 질문들을 조금씩, 하나씩 던져보고 있다. 그리고 답한다. 조금 우울해. 컨디션은 나쁘지 않아. 요즘 편두통이 자주 찾아와. 그럭저럭 지내. 괜찮아지는 중인 것 같아. 


  스스로를 속이지 않기로 한다. 어차피 혼자 주고받는 대화니까. 정말로 괜찮아지는 중인 것 같다. 주변에서 던져주는 작은 응원의 끝을 잡고 조금씩 막막한 길을 더듬어 나가는 중인 것 같다. 어디로 가는지, 길의 끝이 어딘지, 끝이 있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나가보기로 한다. 나가다가 다시 멈추고, 다시 헤매고, 다시 뒤로 밀린다 하더라도. 한 가지 굳게 믿는 것은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것. 그러니 영원한 어둠은 없을 것이다. 당장 삶이 좋아지지 않더라도 나는 내 눈앞의 생을 챙길 의무가 있다. 살아있으니까 살아가고 싶으니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잘 자려고 노력하고, 밥도 잘 차려 먹으려 애쓴다. 집을 청소하고 옷장을 정리하며 계절이 지나감을 느낀다. 볕이 좋은 날엔 밖에 나가서 걸으며 음악도 듣고 사람들도 구경한다. 동네 슈퍼와 과일가게에서 장도 보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 읽는다.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도 하고, 엄마에게 오늘 먹은 점심 사진을 보낸다. 이렇게 글도 끄적거리고 슬픈 드라마를 보며 조금 운다. 


  저마다의 생이 있다. 누구나 자신의 생이 가장 가여울 것이다. 내 생이 가여운 만큼 내가 제일 많이 나를 다독이면 된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내면 또 하루를 더 살아내고, 그다음 하루를 살아내고 그다음의 하루를 살아간다. 대단하지 않고 멋지지 않아도 내 생의 하루를 살아냈다면 그걸로 됐다.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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