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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Dec 13. 2023

모두가 늙어가는 세상


   내향형 인간으로서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하나 편해진 게 있다면 비대면 주문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처음엔 하나 둘 정도 더니 이제는 거의 대부분 가게에서 키오스크를 볼 수 있다. 마트에 셀프 계산대가 많아지고, 최근 동네에 새로 생긴 곳은 아예 ‘현금 없는 매장’을 내걸며 셀프 계산대만 배치했다. 극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은 아니지만, 직접 하는 주문보다 기계로 하는 주문이 편하다. 시간을 가지고 고민할 수 있고, 틀려도 다시 되돌아가면 되고, 마음이 바뀌면 별 말없이 그 자리를 뜨면 된다. 

  나는 컴퓨터나 기계에 대한 지식이 얕은 편이고 어떻게 봐도 기기를 잘 다루는 사람은 아니다. 대학교 다닐 때는 워드를 쓰는 게 불편해서 과제를 손으로 써가서 교수님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그는 이렇게 정성 들인다고 점수 잘 주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점수를 잘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손으로 쓰는 게 편했다. 그 정도의 아날로그 인간이지만 아직 젊은 관계로 키오스크가 불편하지 않다. 간혹 기계에 따라서 방식이 복잡하거나 터치가 잘 안 되면 늦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곧잘 해낸다. 엄마는 나나 동생이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걸 보면서 ‘네들 없으면 이제 햄버거도 못 사 먹겠다.’고 했다. 엄마한테 이거 그냥 골라서 담으면 된다며 쉽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까.     

 



  친구와 카페에서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엄청나게 장사가 잘 되는 바쁜 매장이었다. 직원들은 밀린 주문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한 할아버지가 키오스크 앞을 서성였다. 키오스크가 두 대였는데 줄을 서 있었고, 어떤 남자가 주문 안 하실 거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망설이며 옆으로 빠져서 카운터 앞에서 직원들을 쳐다봤다. 나지막하게 직원을 불렀는데 직원이 대뜸 ‘키오스크를 이용해 달라’고 했다. 그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고 나와 친구는 서로를 보며 눈치를 살폈다. 마침 나와 친구의 커피가 나왔을 때, 한 남자가 할아버지의 주문을 대신해주는 듯했다.

  나와 친구는 카페를 나오며 이런 대화를 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수록 기술이 발전할 텐데, 그건 계속해서 나이 든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일이 아닐까.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춰 새롭게 배우고 적응해야 하는 건 맞지만, 조금 차갑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삶을 좀 더 편리하게 만들지만, 어떤 이에게는 오히려 복잡하지 않을까. 그에 따라 인간들의 마음이나 감정도 낮은 온도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앞에 선 누군가 키오스크를 잘 다루지 못해 시간이 더디 걸리면 짜증이 났던 나를 떠올렸다. 그 누군가는 내 엄마가 될 수도, 미래의 내가 될 수도 있는데. 나는 아직 늙어보지 않아서 50세나 80세의 몸과 마음을 모른다. 가까이 있는 글씨가 어떻게 잘 안 보이는지, 무릎이나 허리가 얼마나 시리고 아픈지, 피부가 얼마나 쳐지고 흰머리가 늘어나는지. 그러나 그때까지 산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건 어찌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늙어보지 않았다고 해서 영원히 늙지 않는 게 아니므로. 늙은 몸과 마음을 가지고 더 놀랍게 발전한 기술 앞에서 쩔쩔매는 나를 그려본다. 키오스크 앞에서 커피 한 잔을 시키지 못해 서성이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만의 모습이 아님을 안다.     



  며칠 전 찹쌀 꽈배기를 파는 가게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전동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가 슬금슬금 와서 곁에 멈추더니 아주 느린 동작으로 주머니 여러 개를 뒤졌다. 먼저 외투 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지폐 몇 장을 꺼내셨는데, 외투 밖 주머니에서도 지폐를 꺼내 한참을 만지작거리셨다. 대놓고 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신경이 쓰여 계속 곁눈질을 했다. 어디선가 지갑이 또 나와서 이번에는 동전을 꺼내시는 것 같았다. 대충 상황 파악을 했다. 키오스크는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에게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있었고, 휠체어를 타지 않았다 해도 키오스크로 주문하기는 힘들 것이다. 직원들은 밀린 주문을 처리하느라 바빠서 매장 안쪽에 있었고, 지폐를 몇 개씩 꺼내 만지작거렸던 것은 돈을 세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내 옆에 멈춘 이유가 있다는 걸 알았고 먼저 눈을 맞췄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손짓을 하시더니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말씀이 어려운 분인 듯했는데 파, 파, 세, 셋, 의 단어를 뱉으며 메뉴판을 가리켰다. 메뉴판의 세 번째 순서에 팥 도넛이 있었다. 팥 도넛이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열심히 센 네 장의 천 원 지폐와 오백 원 동전을 가지고 매장 안으로 들어가 팥 도넛을 주문했다. 직원이 설탕 묻혀 드릴까요? 하고 물어서 다시 뛰어나가 할아버지께 물었다. “어르신, 설탕 묻혀서 드릴까요?” 여러 번 고개를 주억거리는 할아버지가 귀여우셨다. 

  나는 내 몫의 꽈배기를 받고, 할아버지의 팥 도넛을 받아 전동 휠체어 앞 바구니에 실어 드렸다. 직원이 꽈배기 하나를 서비스로 넣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알 수 없는 말을 하시며 나보다 빠르게 멀어지셨다. 아마 고맙다는 인사였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날 남은 시간 내내 기분이 좋았다. 별 거 아닌 일이었다. 주문이 힘든 누군가를 위해 대신 주문해 주는 일, 돈도 시간도 품도 들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따듯하게 채워졌다. 나에게도 누군가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마음이 아직 남아있다는 걸,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위해 꽈배기 하나를 더 넣는 마음이 있다는 걸, 기술이 늙어가는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해도 여전히 그런 마음들이 있다는 걸 알아서였다. 인간을 위하는 인간의 마음. 

  할아버지는 팥 도넛을 맛있게 드셨을까? 혹 할머니가 좋아하는 간식이라 사신 걸까? 어찌 되었든 내 별거 아닌 일로 누군가 팥 도넛을 맛있게 먹고 짧은 순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차가운 세상도 그런 짧은 순간들로 데워지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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