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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여름 May 08. 2023

4. 단단한 씨앗

함께 자라는 순간들

아이가 6살 때, 한창 놀이터를 제 집 삼아 들락거리는데 나는 그 공간이 매우 불편했다.

아직 뭘 모르는 나이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뭘 모르는 나의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할 지 몰라 늘 지켜보고 불안해 했다.


이 맘때의 아이들이란 다 잘 놀았다가도 토라지고 싸웠다가 다시 놀고 하는 것인데, 그런 갈등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특히 ‘너랑 안 놀거야’, ‘얘가 싫다는데 자꾸 따라와요’ 하며 나에게  우리 아이 때문에 불편하다는 하소연을 하는 아이를 마주할 때면 참 상처가 되었다.

그런 순간은 극히 일부의 아이들에게서만 발생되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면 되는데 나는 쿨하지 못했다.

어제까지 잘 놀던 애가 왜 저러지, 우리아이한테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또 우리아이한테 ‘부정적인 경험’을 줄까봐 놀이터를 나갈 때마다 걱정이 되었고, 급기야 유치원 선생님께 상담까지 받았다. 선생님께서는 유치원에서는 전혀 그런 일이 없으니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단 부정적인 경험, 거부받는 경험을 많이 접하지 않도록 환경 설정을 해 줄 필요는 있다고 말씀 하셨다.


이 경험으로 인해, 아이가 7살 때는 아이의 친구를 내가 먼저 가렸다.

그리고 유치원에서도 어떤 친구와 어떻게 노는지, 별 일은 없는지 자주 물어봤다. 부모로서 당연한 거기도 하지만, 나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함이 더 컸다.


그러던 어느날, 유치원에서 놀다가 어떤 아이가 나랑 놀지 않겠다고 말을 했다는 소리가 아이 입에서 나왔다.

그 친구는 태권도장에서도 둘이 껴안고 놀던 친구였기에 나는 순간 심장에 턱 내려앉았다.

“내가 종이접기를 만들고 있는 걸 두 개나 더 접어달라고 해서 힘들다고 했더니, 그럼 나랑 안 논다고 했어. 앞으로 나랑 안 놀거래.

  그래서 내가 그런걸로 친구를 안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했어.“

“그랬더니 친구가 뭐래? 많이 속상했겠다.”

“걔가 속상한 거 아니야? 그런 걸로 친구랑 안 논다는 게 말이 돼? 어쨌든 나랑 안 논다는 건 걔 마음이니까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거잖아. 나는 다른 친구를 찾았어.”


스피아민트처럼 쿨내나는 아이의 대답에 순간적으로 당황스럽고 놀라웠다.

그 순간, 지금까지 나와 아이의 상처라고 생각했던 그 ‘거부’의 경험은 실제로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그 친구들이 우리 아이와 놀지 않는다고 한 것도 실은 아무 이유가 없었으며, 그 마음까지 우리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를 찾으면 되는 일이었다.

내가 그렇게 쿨내나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유치원에 상담을 하는 일도 없었을 거다. 어린 시절의 나라면 그런 경우에 아마 힘들게 종이접기를 두 개 더 접어주고 있었을 것을 안다.

아이의 마음 속에는 나보다 더 단단한 씨앗이 싹트고 있음에 틀림 없었다.

나는 섣불리 아이의 마음을 예측하고 재단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에도 단단해 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받게 된다.

‘상처’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내가 상대방에게 기대를 하고 그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 느끼는 감정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을 한 것이 실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고의로 그런 것인지를 먼저 판단하고, 상대방이 사과를 한다면 상처는 아물게 된다. 이 판단은, 혼자서 상대방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상대방과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과를 해도 표면적인 사과거나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면, 그런 행동들로도 일단 마음의 정리가 된다.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한 행동’에 너무 몰입을 하거나, 그 사람의 대응에 더욱 화가나고, 혹은 내가 한 번 참지 라고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상처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우선은 보여진 행동들에 대해 판단을 하고, 나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

만약 있다면 나도 사과를 함께 해야 한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면, 나는 당당하고 내 마음은 괜찮아 져야한다. 이번 기회로 인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한층 더 배웠다고 생각하면 된다.

상처에 취약한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내 마음은 괜찮아 져야 한다’ 는 생각이다. 그 생각은 하지 않고 ‘나는 상처 받았어’라는 상황에 더욱 이입한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 보다는 나의 감정을 더욱 잘 돌볼 줄 안다.


아이가 상처에 취약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연습을 통해 이를 개선해야 한다.

나는 무려 30년이 넘는 삶을 그렇게 취약하게 살았고, 책을 통해 그리고 상담을 통해 단단해 지기 위해 아직도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 예순이 넘은 엄마와 통화를 하며, 엄마에게서도 싫은 감정을 꾹꾹 눌러가면서 누군가의 종이를 접어주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결국 환경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도 가끔 잔소리를 하며, 엄마의 내면이 더욱 단단해 지기를 바라는 중이다.

어린 아이들은 쌓인 경험이 적기 때문에 훨씬 더 쉽다.

많은 대화를 통해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이야기 하고, 속상한 일에는 몰입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지 뭐’ 하고 넘기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속상한 마음보다, 나의 속상한 마음을 먼저 보듬어줄 수 있게 해줘야한다. 그게 내 씨앗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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