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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May 31. 2024

全琫準에게 보내는 편지


      全琫準에게 보내는 편지

 

 萬頃들판에 서면 이다지 귀 밝은 나이 스물셋 萬頃들녘 낮게 내려앉은 하늘의 소리가 들린다.

 人乃天 人乃天 웅성이며 불온스레 소요하던 바람떼들 어느새 칼바람이 되어 내 심장에 칼날 번득이며 떨고 있는데.


 琫準兄 녹두꽃 흐드러지게 피는 날은 兄소식 얼마간 알 수 있을런지, 떠도는 바람조차 의 斥倭의 깃발 활짝 펼치는구려.

 노령의 山끝에서 녹두벌판 황톳길까지 남접접주 全琫準 시러베 같은 들꽃마다 斥倭의 굵은 이름 새겨놓고, 파랑새 유유히 날아들던 낮은 들판, 아아 핏빛 유배지로 변하던 날 兄은 대체 무얼 하셨소江물조차 목 놓아 울던 날 兄은 무얼 하셨소. 우금치 마루에 지금도 술렁이는 불온한 바람 兄은 보셨소.


   떠나던 길에서 짚신 미투리 닳도록 그리움 부여잡고 조선은 오래 울어야 했소. 아픔도 슬픔도 오래 묵을수록 좋은건지 나는 모르겠소이다만, 슬픈 땅끝 역사의 굴곡마다 흘러나오는 여러 갈래 이름 모를 강, 땅이 되듯 엎드려 슬픔을 죽이고 죽이노라면 눈물처럼 유유히 흐르는 바람소리 兄은 듣고 있소.

 봉준형 이 밤도 강물 출렁이고 이름 모를 조선의 풀꽃 하나까지 슬픔에 떠는데. 척왜의 나팔소리에 죽창마다 깃발 나부끼는 꿈 지금도 나는 꾸오.

 부디 오래 건강하시오 정녕 이 밤도 兄이 그립소,


 들판에 서면 이다지 귀 밝은 나이 스물셋   萬頃들녘 낮게 내려앉은 하늘의 소리 들린다.

人乃天 人乃天 웅성이며 불온스레 소요하던 바람떼들 어느새 칼바람이 되어 내 심장에 칼날 번득이며 떨고 있는데.





    1987년 모대학신문사 문학상 수상작. 불온한 시대와 불순한 정치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고 행동하고 아파했던 젊은 날의 내가 보인다. 시를 공부하던 시절 절차탁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고치고 또 고치며 글을 다듬어 썼던 시 한 편. 잊고 지내다 어느 날  낡은 앨범에 곱게 스크랩되어 있는 신문지면의 시를 다시 발견하고 복잡한 생각에 잠긴다. 잠시 고민하다 브런치로 옮긴다. 


   수십 년 전의 내 글을 다시 찾아 올리는 것이 무슨 의미 일까? 그때의 감성은 지금 의미가 있을까? 

  과거의 나와 마주 서면 부끄러움이 먼저 앞선다. 하지만, 글에 대한 순수하고 순진한 열정을 다시 기억하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사실은 지면 한켠에 적힌 치기 어린 당선소감글이 나를 더 부끄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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