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곧 관계가 될 때, 교회는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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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차에서 우리는 복지라는 제도를 통해 사랑을 구체적인 돌봄으로 확장하며 공동체를 사회와 연결한 교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제도적 복음이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사회적 신경망이 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그 사랑이 '공간'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어떻게 세상과 다시 만나는지를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신앙은 결국 삶의 태도이며, 그 태도는 우리가 머무는 공간의 모양에 의해 가시적으로 결정되기에, 공간 철학의 필요성은 깊은 신학적 문제입니다.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예배 공간'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견고한 경계를 세웠고, 이는 신앙을 고립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본래 닫힌 성전의 공간이 아니라, 열린 광장의 공간에서 관계를 회복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이 열린 공간의 신학을 가장 깊이 탐구하고 건축으로 구현한 교회들 가운데, 무학로교회와 제주 방주교회가 있습니다.
교회 건축은 단순한 구조물을 짓는 행위를 넘어, 신학의 물리적 언어이자 복음의 ‘가시화된 관계 구조’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세계, 곧 ‘공간 안으로 직접 들어오신 사건’인 성육신은 이 공간 신학의 핵심입니다. 닫힌 공간이 신앙을 고립시킨다면, 열린 공간은 신앙을 사회 속으로 확장합니다.
1. 무학로교회 — 비움의 미학, 관계의 공간
건축가 승효상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무학로교회는 근대 이후 교회가 흔히 지향해 온 기념비적 웅장함을 철저히 거부합니다. 그의 건축 철학인 ‘빈자의 미학’은 이곳에서 빛을 발합니다. 교회를 '세상과의 경계가 아닌, 관계의 여백'으로 설계한 것입니다.
이 교회는 굳건한 돌 대신 따뜻한 질감의 붉은 벽돌을 사용하고, 건물의 높이를 낮춰 주변 주택가의 스케일에 조용히 순응합니다. 예배당 앞의 텅 빈 마당, 건물 곳곳에 배치된 작은 틈과 여백은 ‘비움’을 통해 하나님이 거하실 틈을 만듭니다. 이는 인간의 욕망과 성취로 가득 찬 공간이 아닌,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신앙의 태도를 건축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무학로교회는 “비움의 공간이 곧 임재의 공간이다”라는 역설을 통해, 거대하지 않고 낮은 곳에서 사람을 품는 복음의 자세를 물리적으로 구현했습니다.
2. 제주 방주교회 — 상징의 공간, 구원의 형상
제주도의 평화로운 자연 속에 자리한 방주교회는 건축가 이타미 준의 대표작입니다. 이 건축은 물 위에 떠 있는 방주의 형상, 즉 구원의 언약을 공간으로 형상화한 신학적 선언입니다. 방주는 세상의 혼돈과 파괴로부터 생명을 구별하는 '구별의 공간'이지만, 이는 세상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기 위한 닫힘이 아닙니다. 오히려 언약을 통해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준비하며 하늘을 향해 열리는 개방의 구조를 상징합니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구조는 교회가 세상에 뿌리를 내리되, 세속에 잠식되지 않고 영원한 가치를 지향하는 ‘물 위의 신앙’을 표현합니다. 특히 예배실의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성도들의 시선을 강렬하게 하늘로 이끌며 수직적 개방성을 강조합니다. 방주의 형태는 인간과 신, 하늘과 땅의 관계를 재정의하며, 예배 공간을 구원과 언약의 상징으로 만듭니다.
무학로의 ‘비움’과 방주의 ‘열림’은 모두 “하나님이 거하실 자리를 인간의 공간 속에 마련하려는 신학적 언어”입니다. 이 철학은 교회의 건물이 단순히 기능을 위한 구조물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사랑의 선언이자 신뢰를 구축하는 상징물임을 역설합니다.
이러한 공간 철학은 이제 세 교회—과천, 강진, 들꽃향린—에게 “공간은 관계다”라는 사상을 구체적인 공동체 실천으로 확장시킬 신학적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무학로교회와 방주교회가 '비움과 열림'의 공간 철학을 제시했다면, 과천교회는 그 철학이 공동체의 현실 안에서 구현된 대표적 실천 사례입니다.
과천교회는 신앙의 중심 공간인 예배당 1층 전체를 지역 사회에 헌납하며 ‘열린 마당’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더 이상 교회만의 공간이 아닙니다. 환한 채광 아래 카페가 운영되고, 작은 공연과 전시회가 열리며, 지역 주민들이 아무런 부담 없이 머무는 쉼터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예배당 건물을 ‘공공의 플랫폼’으로 전환했고, 교회가 '머무는 사람'을 환영하는 구조로 변화하면서, 예배 공간은 자연스럽게 “지역의 공공 리듬” 안으로 흡수되었습니다. 교회의 존재가 '건물'이 아닌 '공동의 시간'이 되었음을 보여주며, 신뢰는 눈에 보이는 공간의 개방과 함께 주민들의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강진 생명교회는 무학로교회가 보여준 겸손함과 방주교회가 지향하는 구별된 사랑을 농촌 공동체 속에서 펼쳐 보입니다. 이 교회는 '창문이 많은 예배당'을 통해 예배당 전면을 거의 통유리로 만들어 교회 안팎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예배당은 마을 주민들에게 완전히 개방되어 농산물 장터, 독서 모임, 돌봄 프로그램 등 다기능 복합공간으로 활용됩니다. “교회의 벽이 유리로 바뀌면, 신뢰의 벽도 사라진다.” 물리적인 창문은 곧 투명성과 접근성이라는 신뢰의 가치를 구현했습니다. 주민들은 창 너머로 예배의 모습을 엿보기도 하고, 낯설지 않게 교회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필요를 채웁니다. 공간의 개방이 공동체의 신뢰를 낳는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이 공간은 마을 공동체의 열린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서울 도심 속 들꽃향린교회는 무학로와 방주교회의 철학을 도시에 적용하며, ‘공공 건축의 신학’이라는 가치를 구현했습니다. 이 교회는 공공 건축가와 협업해 교회를 ‘도시의 숨 쉴 틈’이라는 개념으로 설계했습니다.
옥상 정원은 도시민 누구나 와서 쉬어갈 수 있는 녹색 공간이 되었고, 전면 유리로 된 예배실은 안팎의 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1층 도서실은 지역 주민 누구나 드나드는 열린 문화 공간입니다. 이 건축은 “교회는 거룩한 섬이 아니라, 도시의 숨결이 닿는 폐포(肺胞)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교회는 도시가 숨 막혀 할 때 함께 호흡하는 허파와 같은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공공신학을 건축의 미학으로 확장했습니다. 교회의 건물이 단순히 기능을 위한 구조물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사랑의 선언이자 신뢰를 구축하는 상징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눔(25화)과 복지(27화)가 관계의 구조를 세웠다면, 이제 공간은 그 관계의 물리적 구조를 완성합니다.
교회 건물은 단순히 종교 의례를 위한 시설이 아니라, 지역 사회와 연결되는 “사회적 신경망(Social Nerve)의 역할을 합니다. 열린 공간은 신뢰의 첫 번째 감각입니다. 문이 열리고 벽이 사라지며 낯선 이들이 부담 없이 교회를 드나들 때, 그들은 비로소 교회를 '함께 사는 이웃'으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공동체 회복의 시작은 바로 공간이 사람을 초대하는 순간에 있으며, 공간의 개방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싹 틔우는 영적인 행위입니다.
이러한 공간의 활용은 구약의 성전 신학에서 신약의 성육신 신학으로의 명확한 전환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성전이 '하나님을 모시는 특정한 장소'였다면, 신약의 교회는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의 공간 안으로 들어오신 사건', 즉 성육신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 건축과 공간 운영은 이 성육신 신학의 현대적 표현입니다. 교회가 공간을 개방하고 이웃과 공유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의 한복판에 임하신 것처럼, 교회도 세상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행위입니다. “머무는 공간이 열린다면, 하나님은 다시 그곳에 임하신다”는 믿음이 이 사역의 근간입니다. 공간은 곧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관계의 제사이며, 복음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실체가 됩니다.
27화에서 복지 사역이 사람을 돕는 제도였다면, 28화에서 공간은 사람을 머물게 하는 관계의 집입니다. 열린 공간은 단순히 교회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을 넘어, 복음이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구체적인 문이 됩니다.
철학은 실천으로, 공간은 관계로, 그리고 교회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무학로교회와 방주교회가 제시한 비움과 열림의 신학은, 과천·강진·들꽃향린교회에서 삶의 구조로 현실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물리적 공간의 개방은 교회가 세상에 대한 신뢰를 먼저 보여주는 행위이며, 이는 곧 복음이 세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증거가 됩니다. 복음은 공간을 품을 때, 다시 사람을 품습니다. 머무는 교회는 머물지 않고, 세상 속으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다음 회(29화)**에서는 이 열린 공간을 지속시키는 내적 구조, 곧 재정과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통해 신뢰를 제도적으로 복원하려는 교회의 실험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사랑이 제도가 되고, 제도가 복음의 언어가 될 때 교회는 다시 세상을 치유합니다.
아산·주안·성민교회는 복지를 단순한 시혜가 아닌 신뢰의 구조로 세운 교회들입니다.
복음이 행정과 제도 속에서 사회적 신뢰로 환원되는, 공동체 회복을 위한 영성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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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28화) 예고
“열린 공간, 머무는 교회” — 공공의 시간을 품은 예배당
교회의 건축과 공간은 단순한 예배 장소가 아니라,
세상과의 관계를 열어젖히는 복음의 문이 됩니다.
28화에서는 공간을 통해 사랑을 구조화하고, 교회가 지역의 공공 플랫폼으로 변모하는 사례들을 다룹니다.
안녕하세요.
『공동체 회복을 위하여』 연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글을 시작할 때보다 더 많은 자료와 사례를 만나게 되면서,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연재의 목차와 내용을 조금씩 수정하며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예정된 연재 일정에 변동이 생기더라도,
이 모든 과정은 더 나은 글을 선보이기 위함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독자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제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재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너그럽게 양헤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