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과 의사결정의 공공성을 통해, 교회가 세상의 빛으로 드러나려는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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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장들을 거치며 사랑을 구조화하는 일에 매진해 왔습니다. 그 사랑은 나눔의 곡간을 열었고(25화), 세대를 잇는 교육을 낳았으며(26화), 사회를 품는 복지 구조로 확장되었습니다(27화). 그리고 마침내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열린 공간(28화)을 건축했습니다.
이 모든 헌신의 건축물은 오직 하나의 기초 위에 서 있습니다. 바로 신뢰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의 구조 전체를 위협하는 가장 근원적인 불안은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의 내부에서 시작됩니다. 재정과 권력이 닫혀 있을 때, 사랑의 행위는 곧 의혹의 대상이 됩니다. 교회를 향한 세상의 차가운 시선은 외형적인 화려함보다, 내부 운영의 불투명성이라는 깊은 상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닫힌 교회의 문은 제도보다 마음으로 잠겨 있었습니다. 투명성은 그 마음을 여는, 마지막이자 처음의 열쇠입니다. 교회는 이제 사랑의 순환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빛 아래로 걸어 나오는 고통스러운 여정을 선택해야 합니다.
투명성은 교회 행정의 윤리적 기준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투명성을 요구하는 신학적 근거는 두 기둥 위에 서 있습니다. 첫째, 교회는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Steward)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속한 모든 것—재산, 권력, 시간—은 오직 주인의 것입니다. 청지기는 잠시 관리하는 자로서, 숨길 권리가 없으며 반드시 온전하게 보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숨김없는 보고는 곧 예배이며, 재정 공개는 신앙의 고백이 됩니다.
둘째, 교회는 빛 가운데 거하는 존재여야 합니다(요한일서 1:7). 빛은 숨겨진 어둠을 드러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라면, 그 내부에 그림자가 드리워서는 안 됩니다. 온전함(Integrity)이란 숨김없는 마음의 구조입니다. 신앙이 삶과 일치할 때, 교회는 그 자체로 하나의 투명한 존재가 됩니다. 투명성은 이 온전함을 공동체의 제도로 확증하는 행위입니다.
신뢰를 제도화하는 첫 번째 영역은 가장 첨예한 재정의 공개입니다. 많은 교회가 전통적인 보고서 형식에 머무를 때, 신뢰를 회복하려는 교회들은 재정을 '하나님의 언어'로 바꾸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총액을 보여주는 결산을 넘어, 지출 내역과 영수증까지 상세하게 공개했습니다. 어떤 교회는 성도들이 스마트폰으로 헌금의 사용 내역과 예산 집행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처음에는 낯섦과 불편함이 있었지만, 곧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숫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숫자는 교회의 양심이 되었고, 재정을 둘러싼 불필요한 의혹과 소문은 그 투명성 앞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신뢰는 거기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재정 공개는 단순히 회계 장부를 열어 보이는 행위가 아니라, 성도들의 헌금이 복음적 목적을 향해 얼마나 정직하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증언하는, 공동체 전체의 공적 신앙 고백이 되었습니다.
재정의 투명성이 '돈'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거버넌스의 투명성은 '권력'의 문제를 다룹니다. 교회의 신뢰가 무너지는 또 다른 지점은 소수 리더십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의사결정 과정이 닫혀 있을 때입니다.
공동체의 지혜를 회복하려는 교회들은 의사결정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했습니다. 그들은 담임목사, 장로, 집사, 평신도까지 모든 계층을 포함하는 '수평적 회의체'를 구성했습니다. 중요 사안은 이 테이블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토론되었고, 그 과정과 회의록은 상세히 공동체에 공개되었습니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모일 때, 교회는 어둠을 향해 기울었습니다. 그러나 빛은 늘 나뉘어 있을 때 가장 밝습니다. 이 거버넌스 개혁은 리더십의 권위를 약화시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동체 전체의 동의와 책임 아래 세워진 신뢰 기반의 권위를 획득했습니다. 교회는 수직적인 조직이 아닌, 빛을 나누는 수평적 동역의 공동체로 변화했습니다.
투명성의 구조는 반드시 투명성의 문화로 이어져야만 살아있는 제도가 됩니다. 제도화는 뼈대이지만, 문화는 그 뼈대 안에 흐르는 따뜻한 피입니다.
신뢰 회복에 헌신하는 교회들은 자발적인 문화적 실천을 보여줍니다. 목회자가 자신의 사역 일정을 공개하고, 개인적인 후원금 사용 내역까지 공동체에 소상히 보고하는 것은, '감시당하는 의무'가 아닙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향한 '사랑의 자기 노출'입니다. 투명성은 감시의 눈이 아니라, 사랑의 빛으로 서로를 비추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상의 자발성은 공동체 전체에 '숨김이 없음'을 전제로 하며, 투명한 구조를 성도의 영적 훈련이자 기쁨의 반복이 되도록 합니다.
우리가 25화부터 28화까지 쌓아 올린 모든 사랑의 구조—나눔, 세대, 복지, 공간—는 29화의 투명성이라는 구조를 통해 비로소 영속적인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투명성은 이 모든 아름다운 선행들이 '개인의 선의'라는 덧없는 기초 위에 서지 않고, '공동체의 제도'로서 영구히 지속되도록 보장하는 안전장치입니다.
투명성은 나눔의 순수성을 지키며, 세대 간의 신앙 계승이 왜곡되지 않도록 막아섭니다. 투명성은 신뢰의 유전구조(Genetic Structure of Trust)가 되어, 사랑을 담는 그릇인 교회 공동체가 부패하지 않고 본래의 순결함을 유지하게 합니다. 빛은 한 번 켜지면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투명한 교회는 그 빛을 제도로 붙잡은 공동체입니다.
투명성을 제도화하는 과정은 인간의 본능적인 '숨기고 싶은 마음'과의 싸움이기에 불편하고 때로는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는 교회가 세상의 불신과 내부의 탐욕이라는 어둠을 물리치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처럼 빛 가운데로 나아가려는 고귀한 헌신입니다.
투명한 구조는 궁극적으로 교회에게 공공성(Publicness)이라는 영적 권위를 부여합니다. 모든 것이 공개되었기에, 교회는 더 이상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시간은 닫힌 재정 장부가 아닌, 모두에게 열린 회의 테이블에서 흘러갑니다. 신뢰의 제도화는 교회가 복음의 본질인 정직성과 공정성을 제도적으로 구현하며, 사랑의 구조가 완성되는 절정의 지점입니다.
29화에 이르러 우리는 공동체 회복을 위한 사랑의 구조 5단계 순환을 완성했습니다. 모든 순환의 동력이 꺼지지 않고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오직 투명한 신뢰의 제도였습니다.
우리가 만난 교회들은 특별한 프로그램이 아닌, 복음적 순환을 제도화하는 과정이야말로 한국 교회의 유일한 희망임을 증언했습니다.
사랑은 말로 흘러나오고, 신뢰는 구조로 남습니다. 그 구조가 투명할 때, 교회는 비로소 다시 세상의 신뢰가 됩니다.
다음 회 (30화) 예고
'사랑의 완성과 공동체의 미래'
“사랑의 순환, 회복의 완성” — 공동체가 다시 세상을 품다
나눔에서 시작된 사랑은 세대를 잇는 교육으로, 사회를 품는 복지로,
그리고 열린 공간과 투명한 구조로 이어져 하나의 순환을 완성했습니다.
30화에서는 이 모든 여정이 향하는 마지막 지점,
‘살아있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성찰하며
사랑의 구조가 어떻게 세상의 희망이 되는지를 함께 그려봅니다.
안녕하세요.
『공동체 회복을 위하여』 연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글을 시작할 때보다 더 많은 자료와 사례를 만나게 되면서,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연재의 목차와 내용을 조금씩 수정하며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예정된 연재 일정에 변동이 생기더라도,
이 모든 과정은 더 나은 글을 선보이기 위함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독자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