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새 Winter Robin Jan 06. 2024

뜨거운 라면이 당기는 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

어젯밤에는, 행복과 후회가 교차했다.


나는 하필 이른 시간에 저녁을 먹어 배가 고팠고, 하필 밤늦은 시간까지 깨어있었으며, 하필 집에는 육개장 사발면이 있었던 것이다.


라면과 치킨 중 한쪽을 평생 포기해야 한다면?


나는 치킨을 포기하고 라면을 먹을 것 같다. (오히려 고기라면 더 고민할지도.) 그 정도로 라면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육개장 사발면은 특별하다. 학생 때부터 육개장 사발면(애칭은 육사)은 너무나 쉽게 손에 잡히는 편의점 밥이었다. 조금 작은 느낌이긴 했지만 맛도 좋고, 삼각김밥과 같이 먹으면 맛은 물론 양까지 완벽한 한 끼 식사가 됐으니까. 어쩌면 그  시절 육사 먹는 버릇이 들어 지금도 출출한 야밤에 제일 못 참는 라면이 됐는지도 모른다.


추억 여행은 이쯤 하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부엌에 있는 육사를 떠올리며 군침을 흘리고 있다. 다른 라면에 비해 가늘고 바삭하고 꼬들한 면발과 매콤 달달한 국물, 그 속에 있는 가짜 어묵과 옥수수 콩인가 싶지만 스펀지 같은 식감의 노랑 알갱이. 뜨거운 물을 붓고 뚜껑을 덮기 전, 수면 위로 떠오른 라면 디스크 위에 아메리칸 슬라이스 치즈 하나를 살포시 올려두고 뚜껑을 덮는다. 대략 4분이 지나면 잘 녹은 치즈로 면을 감싸 후루룩! 면을 넘기기 전에 국물로 면발을 다시금 적신다. 내 입안이 사발이 되는 그 순간.


아, 진짜 먹고 싶다. 이대로 가다가는 "육사에게 보내는 송가(ode)"까지 나올 판이다.


이렇게까지 바라며 내가 안 먹는 이유는 단 하나다. 현재 내 욕망인지 욕구인질 억누르는 그것. 물론 신년계획에 다이어트나 건강한 삶도 늘 포함되지만, 오늘 내가 참을 수 있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참는 건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훨씬 의지가 강한 사람일 거다.


내가 이 강력한 육사에 대한 갈망을 억누를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건 바로 후회다.


사실 비슷한 일이 어젯밤에도 있었다. 어제는 별 저항도 하지 않고 그냥 먹어버렸다. 그리고 육사 하나를 거의 다 먹었을 때쯤, 후회를 했다. 아, 이 정도로 부를 배라면 그냥 참을걸. 내일 아침 조금 더 떨어진 몸무게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야식으로 육사를 먹은 게 어젯밤이 아니라 지난주의 일이었다면 오늘 밤도 똑같은 수순을 밟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젯밤 느낀 후회를 떠올리며, 육사를 먹는 순간 그 후회가 또다시 나의 미래가 될 거라는 걸 상기시킨다.


나에게 후회라는 건 그만큼 큰 감정인가 보다. 당연히 사람마다 원동력이 되는 감정이나 상황이 다를 거다. 오늘 밤 내게는, 건강하게 다이어트에 성공한 미래의 내 모습보단 어젯밤 후회하던 내 모습이 더 효과적인 듯싶다.


인내심을 시험당하며 결국 그 욕망을 풀기 위해 이렇게 글로라도 풀게 됐다. 그게 도움이 됐나? 적어도 글을 쓰는 시간만큼의 시간이 지났고, 여전히 군침이 돌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지만 이제는 자러 갈 시간이다.


스테이지 클리어.


오늘 밤은 육사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아침 식사 메뉴는 이미 정했다.)

어제를 반복하지 않았고, 어제보다 조금 나은 내일이 됐다.


이렇게, 나는 후회 하나를 줄였다.

후회의 순기능이라면 이런 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우주에 눈을 떠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