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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물 Feb 24. 2023

원래

그것도 나였어라


요 며칠 얼굴에 여드름이 새로 올라와서 꽤나 신경이 쓰였다. 여드름은 한 번에 났다가 확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며칠 동안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거울을 볼 때마다 여드름이 익어가는 정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 괜찮아지나, 은근히 신경을 쓰며 '아 원래 내 피부 이렇지 않은데'하고 있다가,

'그럼 보통은 내 얼굴이 어떻지?' 하고 생각해 보았다.


특별한 다른 원인이 아니라면 생리주기에 따라 피부 상태가 달라지는데, 생리주기 1주일 전쯤부터 여드름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한 주 동안 익어가다가 또 다른 한 주는 점점 괜찮아지고, 한 주는 피부 상태가 괜찮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원래의 내 얼굴'이라고 하는 뾰루지가 하나도 없는 피부 상태는 한 달에 일주일만 볼 수 있다. 그걸 원래 내 얼굴이라고 할 수 있나? 한 달에 3주는 여드름이 나고 있거나 났거나, 괜찮아지고 있는 중이거나 하는 상태인데.


접근을 다르게 하기로 했다. 내 원래 얼굴은 어느 정도 잡티와 뾰루지가 있는 상태라고. 매끈한 피부 상태인 것이 드물고 특이한 상황이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여드름이 올라와도, '그러려니'하며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원래의 내 모습인데 뭐.


결혼 후 출산과 육아로 살이 많이 쪘다고 얘기하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 친구는 너무 예뻤는데, 본인은 늘 이렇게 말했다. "원래 내가 이렇지 않은데 살이 많이 쪘어."

내가 그 친구를 알게 된 이후 몇 년간 쭉 나는 그의 같은 모습을 보고 있는데, 그 친구는 늘 그렇게 말했다. 이게 자기의 원래 모습이 아니라고.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은 마음은 무언가에 열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기 때문에 좋지만, 잠깐 도달했던 혹은 잠시 맛본 마음에 드는 순간을 '원래의 내 모습'으로 설정해 놓는 것은 보통의 나를 늘 불만족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 친구는 자신이 살쪘다고 이야기했던 그 많은 날들 동안 늘 예뻤고, 친절했고 좋은 사람이었다. 나도 내가 여드름 났다고 투덜거릴 때 그렇게 못난 상태는 아니었겠지 짐작해 본다.





나는 보통 사람들과 북적북적 어울리는 것보다는 혼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 

나에 대해서 그렇게 늘 이해해 왔는데, 근래에 친해진 지인을 몇 번 우리 집에 초대하고 함께 시간을 보냈더니 이렇게 얘기했다.

"너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리가 없는데? 너도 사람 되게 좋아한다"

'그런가?'

내가 스스로 나는 어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것과 정말 원래의 내 모습이 다른 걸까.




나의 오래된 일기에서 이런 에피소드를 찾았다.


제목: 그것도 나였어라 (2018. 5. 13)


종종 나는 이 순간을 살면서 이 순간에 나의 껍데기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곤 했다.

가령, 아이를 보면서 때때로 시간 죽이기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보내며 ‘이 모습은 내 본모습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마냥 힘든 게 아니라 편했다는 게 아이러니)


샤랄랄라 한 여성스러운 옷을 고르다가 ‘아 이건 내가 원래 좋아하는 게 아닌데’ 했고,

짙은 색의 옷을 걸쳐 입다가 ‘내가 항상 이런 것만 선호하는 건 아닌데’했다. 


경쾌한 아이돌 음악을 신나게 들으며 ‘난 원래 이런 음악 안 좋아하는데’ 했고,

늘어지는 재즈를 들으면서는 ‘내가 너무 늘어지는 취향을 가졌나?’ 고민했다. 


스스로를 조용하고 사색하기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밖에 나가 놀고 싶어 했으며

아이 보는 게 힘들다면서 아이와 함박웃음을 짓는다. 

책을 읽는 걸 좋아하지만 늘 책을 달고 살지는 않고,

고민하고 생각하는 책임감 있는 지성인이 되고 싶지만 대자본의 히어로 무비를 극장에서 즐겨본다. 


사실, 내가 늘 의문을 품는 대로라면 나는 누구도 아니다. 나는 없다.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기보다는 

‘~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부정문으로 말하는 게 훨씬 쉬운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어떤 사람은 나의 사교적인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은 나의 내성적인 모습을 본다. 

또 어떤 사람은 장난꾸러기인 나를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진지하고 성찰적인 나를 본다. 

누구는 내가 설렁설렁 게으르다고 판단하지만, 또 누구는 내가 철두철미하고 꼼꼼하다고 말한다.


나는 나를 다양하게 혹은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가 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닌데’하면서. 


그런데 문득,

힘들게 아기를 몸 위에 올려놓고 낮잠을 재우면서 깨달아졌다. 

왜 그런 타이밍이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사실 그 모든 게 나였다고. 


신나는 가요도 보사노바도 좋아하는 게 나이고, 공부도 하고 글 쓰는 데서 기쁨을 얻지만 아이와 깔깔 거리며 웃을 때도 정말 기쁘고. 고민 많은 척 생각 많은 듯이 살지만 시답잖은 예능 프로그램 보면서 남편이랑 과자 까먹는 게 즐거운 나이다. 


아이에게 가끔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듯이 질문할 때가 있다. 

“이게 좋아 저게 좋아?”

그럼 아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다~~~~ 좋아”


그래. 다- 좋다. 

이런 나 저런 나 다 좋다. 

다 ‘나’이구나.




원래의 모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내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모습, 가장 자주 하는 행동으로 돌아볼 수도 있겠다. 그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도 원래의 나인데 어쩌겠나, 받아들이고 마음을 편히 놔줘야겠다. 


뾰루지가 있는 내 얼굴도 원래의 내 얼굴이지 뭐.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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