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 조각 맞추기
윤서는 아침 햇살이 커튼 틈새로 천천히 흘러드는 가운데 눈을 떴다.
다락방에서 겨우 내려온 후였고, 밤새 지도 위에 표시해둔 지점들과 메모들을 다시 훑었다.
사진, 노트, 지도, 증언—이 모든 게 하나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 가능성 앞에 그녀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캔버스처럼 펼쳐둔 지도 위에 집중했다.
“여기… 이 담벼락, 사진 속 거리랑 거의 똑같아”
손끝이 바랜 벽돌 표면을 짚으며 중얼거렸다.
그 순간, 전화가 울렸다.
할머니였다.
“어디 있니? 점심이나 같이 할까?”
윤서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지금 조금 바쁜데, 할머니 나중에… 좋아요.”
전화를 끊고 다시 지도에 시선을 옮기자,
지도 위의 점들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인쇄소 옆 골목’, ‘우물터’, ‘장기판 가게’…
그리고 그 사이에 비워진 점 하나.
윤서는 그 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게 병연이 걸음을 멈춘 곳일지도 몰라.”
기록보관소로 향한 윤서는 은아 씨에게 문서를 맡겼다.
“제가 이렇게 기록했는데…”
그녀는 자료 한 묶음을 내밀었다.
은아 씨는 나무 탁자 위에 문서를 펼치며 말했다.
“이건… 흥미롭네. 1945년 8월 중순 당시 신문 외신들 중 일부가
이 시장 골목에서 혼란이 있었다는 짧은 기사를 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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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 기사엔 이름이 없어요. ‘한 사람’이라는 표현만 있었고…
병연이라는 이름은 없어요.”
은아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경우가 꽤 많아. 이름도, 얼굴도 기록되지 않은 분들이
수없이 있었지요.”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1
윤서는 노트북에 적어 내려갔다.
‘이름 없는 사람들, 조각처럼 남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조각을 맞춰야 해요.”
해가 저물 무렵, 윤서는 그날 발견한 흙자국 글씨가 남은 담벼락 앞에 다시 섰다.
벤치에 앉아 지도와 사진을 나란히 펼쳐두었다.
“네가 여기 있었다면…”
손끝이 글씨에 닿았다.
“왜 그날 너는 걸음을 멈췄니?”
그때, 멀리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태극기를 든 아이들이 뛰어다녔고, 그 풍경은 경수와 병연이 꿈꾸던 모습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병연에게는 “기쁨 속 자리”가 없었다.
윤서는 고개를 들고 담벼락 위 하늘을 바라봤다.
기쁨이 모든 걸 덮을 수 없음을, 그 자리에 기대하는 친구 하나 없음을 느꼈다.
밤, 다락방에 올라온 윤서는 작업등을 켰다.
모니터에는 지도의 이미지, 사진, 증언 메모가 펼쳐져 있었다.
커서가 깜빡댔다.
“기록은… 단지 쓰는 게 아니라,
잊히지 않도록 붙드는 일.”
작게 속삭였다.
타이핑이 시작됐다.
한 줄, 한 줄이 무게를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전기 부품 옆에 있는 녹슨 상자에서 아주 작게 탁 하는 소리가 났다.
윤서는 잠시 멈추었다.
그 소리는,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이름이 막 숨을 쉬려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는 속으로 결심했다.
“다음엔 진수와 순옥, 그리고 병연까지.
이름을 부르는 걸 멈추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