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인우 Jan 27. 2020

쟤는 의사도 못 깨워요.

자는 아이들


  고등학교에는 잠을 자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초등학교보다는 중학교에 많고, 중학교보다는 고등학교에 더 많습니다. 일단 교육과정이 점점 재미가 없어지지요. 그리고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잠을 자고 싶어서 잔다기보다는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졸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교육과정이 이해가 안 되거나 너무 흥미가 없어서 일부러 자기도 합니다. 대체로 그러한 행위를 학생의 탓으로 돌리지만 실은 학생 탓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이 잘 수밖에 없는 학교를 우리는 만들고 있으니까요.


  고등학교 과정에서 교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점차 교육과정이 바뀌어 나갈 것입니다. 조금 나아질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학생들에게 엄청 재미있는 수업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교과목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교사들이 여러 교과목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고, 수업부담이 엄청 커진다는 말입니다. 교사들의 행정업무를 생각해 보았을 때, 수업 준비는 대체로 교과서를 위주로 할 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개개인의 교사들이 많이 노력을 하면 조금 더 재미있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한 교사들이 많기는 하지만 우리 수업의 틀이 크게 바뀌지는 못 할 것입니다. 내가 조금 더 좋아하는 과목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좋지만 현재의 입시 제도와 교육과정 내에서는 당장 강의식 수업이 형태를 바꾸지는 못 할 것입니다.


100 전의 학교


  저는 때때로 근대화 과정을 설명하면서 100여 년 전의 교실 사진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곤 합니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자, 무엇이 달라졌나요?”


  물론 많이 달라졌지요. 이제 학생들은 머리를 땋고 다니지 않아도 되구요, 시설을 새로 마련한 학교들은 분필로 쓰는 칠판 대신 전자칠판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책걸상도 그때에 비해서는 훨씬 좋아졌습니다.


  교실의 배치는 어떠한가요? 학생이 이렇게 많은 한, 교실 배치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실의 배치를 바꾸려면 교사 1명당 수업의 학생 수가 15명 내외 정도로는 줄어들어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칠판을 바라보는 강의식 수업을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 같이 토론도 할 수 있고, 옆 친구들과 토론을 할 수도 있고, 자료를 스스로 찾고, 선생님이 봐줄 수도 있겠지요. 그때까지는 계속 강의식 수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물론 수업이 많이 변화하고 있지만 대체로 현재와 같은 학급 상황에서 수업은 강의 중심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입과 연관시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학교는 조금씩이나마 변화하고 있지만 학원은 거의 변하지 않지요. 학원은 더욱더 옛날 교실의 모습을 답습합니다. 내용을 외우고, 문제의 유형을 외우고,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칠판을 쓰는 강의식 수업이 수능 대비에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데 대입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 혹은 대입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 확실한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요? 수업시간에 할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모르는 말을 하구요, 친구들은 뭘 열심히 적구요, 나는 적을 것이 없습니다. 교과서는 분명히 사물함에 넣어뒀는데 누가 가져갔는지 아니면 이동 수업 중에 내가 어디에 두고 왔는지 집에 있는지 아무튼 없습니다. 학습지는 교과서에 끼워놨기 때문에 당연히 없습니다.


  나는 할 것이 없습니다. 교과서 대신 다른 것을 꺼내놓으면 선생님한테 혼날 것이 뻔하므로 나는 이제 잠을 잡니다. 고등학교는 8시부터 수업을 하는 학교가 많기 때문에 등교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부족한 수면을 보충합니다. 목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발이 저리지만 참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일어나도 딱히 할 것이 없고, 일어나서 괜히 친구랑 잠깐 이야기를 하면 벌점이 날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휴대폰도 쓸 수가 없으니 나는 그냥 잠을 잡니다. 그것이 학교생활에서 가장 이롭습니다.


  실은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이고 중학생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에너지가 더욱 넘치고, 아직 학교생활에 덜 적응하였기 때문에 중학생들은 돌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소리를 쳐보거나, 친구를 크게 불러보거나, 선생님께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아직은 벌점이 두렵지 않기도 하고, 퇴학을 당할 일도 없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선생님께 찍힙니다. 쌤들은 우리를 ‘문제아’라고 부르지요. 그렇게 점차 적응을 하면서 고등학교에 와서는 자는 것이 가장 이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학교에서 잠을 자는 학생들이 정말 문제가 많을까요? 처음에는 졸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내 수업이 재미가 없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개그도 열심히 연구해오곤 했지요. 실제로 많이 먹히기도 했구요. 그러나 자는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정해져 있었고, 웬만해선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엄청 재미있는 활동을 하면 가끔 일어나기도 하지만요. 


쟤는 의사도  깨워요


  엄청난 강적을 만났습니다. 한 달 정도를 지켜보았는데 도무지 일어나지 않고 있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디가 아픈가? 걱정이 되기도 하고, 활동을 해야 해서 학생을 깨우려는 순간, 모든 반 친구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 안돼요!”


  ‘아, 이 아이는 진짜 어디가 아파서 누워 있는 거구나. 보건실엔 안 가도 되나?’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한 학생이 말했지요.


“쟤는 의사도 못 깨워요.”


  헉, 이 아이는 마음이 아픈가? 어떤 시간에도 일어난 적이 없답니다. 제가 1학년 2학기 수업부터 들어갔는데 한 학기 내내 일어난 것을 본 적이 없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친구 얼굴이 너무도 궁금하였습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에 그 친구를 볼 수 있었지요.


  수업에 조금 일찍 들어갔는데 매일 자던 그 학생이 종이 한 장을 깔고 자고 있었습니다. 칸이 비죽 튀어나와 살짝 보았는데 직업학교 신청서와 자기소개서였습니다. 제가 조금 읽다가 금단의 일을 하고 말았지요. “**야, 이거 이렇게 쓰면 안 될 것 같아. 여기 진짜 가고 싶니?” 의사도 못 깨우는 그 아이가 살짝 반응을 하였습니다. “내가 대학 때 밴드에서 보컬을 했었거든. 그런데 이거 이렇게 쓰면 거기서 안 뽑을 거 같아.” 그 아이가 드디어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릅니다. 얘가 막 화를 내면서 뛰쳐나가면 어떡하지?


  학생이 “그럼 어떻게 써야 돼요?”라고 작고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어봤습니다. “음... 일단, 지금 고등학생인데 초등학교 때 한 활동만 있으니까 지금 어떤 활동을 하는지, 네가 음악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알 수가 없잖아. 너의 드럼 소리를 들으면 뽑을지도 모르지만 이것만 보면 드럼은 쳐보지도 못하고 서류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지금 동아리 활동하고 있지 않니? 축제 때 본 것 같은데….” “네. 저 밴드부에서 드럼 쳐요.” “그러면 일단 모든 활동을 고등학교에서 한 것 위주로 구체적으로 바꿔서 쓰면 좋겠어.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했다는 정도만 언급하고 말이야. 그러면 너의 연주 경험이 꽤 오랜 것이 되잖아?” 그리고 수업 종이 칠 때까지 몇 마디를 더 나누었고, 학생은 연필로 쓴 내용을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수업은 듣지 않았겠지요. 그걸 다시 고쳐서 써야 했으니까요.


  놀라운 일은, 그다음 시간부터 일어났습니다. 그 학생은 이후로 다시 자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수업을 듣고 있는 것 같았구요. 아마도 저 개인에 대한 흥미에서부터 나중에는 수업에 대한 흥미로 이어졌을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그 학생이 수업 시간 내내 잤던 이유는 학교 교육 과정 중에는 학생의 흥미와 연결되는 것이 하나도 없고, 수업을 방해하는 것보다는 피해가 안 가게 자신이 자는 것이 제일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학교에서   있다면


  그런 학생들은 많았습니다. 수업 시간 내내 멍하니 초점이 없는 눈을 가진 학생이 축제 때 춤을 추는데 세상천지 제일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을 쏘는 것을 보며, 저런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첫 번째 학생이었는데 그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수업 시간에 춤도 출 수 있도록 수행평가를 바꾸었습니다.


  제 수업에서는 그래서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연극을 하고, 뮤지컬을 하고, 영화를 만들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랩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광고도 만듭니다. 학생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을지 몰라서 하나는 걸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만들기도 하구요, 혹은 학생들이 과제하다가 자신의 꿈을 혹시나 발견할까 싶어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그렇게 만듭니다.


  제일 하고 싶은데 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 요리하는 것인데요, 이것은 예산이 필요해서 아직 해보지는 못 했습니다. 세계사와 요리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나요? 여행 광고 만들 때 음식을 만들어 볼 수는 있지만 아직 수업 시간에 요리를 하지는 못했습니다. 여하튼 학교 예산으로 요리를 할 수 있으면 너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관심 분야와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교과 지식도 얻게 됩니다. 연극/영화 만들기를 하면 대본을 외워야 하는데 본인들이 대본을 쓰고, 외우기 때문에 세계사에 나오는 어려운 이름들도 매우 잘 외웁니다. 그래서 그 단원은 문제가 꽤 어려운데도 학생들의 정답률이 높습니다. 학생들은 매우 다양한 특성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데 학교의 모습은 아직 획일적일 때가 많습니다. 학생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학교에서 할 수 있다면 더 즐겁게 학교를 다닐 수 있을 텐데, 졸지 않아도 될 텐데 하고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이런 친구들은 학교 활동이 재미가 없어서 자는 학생들이지만 때때로 반드시 알바를 해야 하기 때문에 너무 피곤해서 자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혹은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너무 어렵거나 마음이 너무 우울해서 자는 학생들도 있지요. 잠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기도 하니까요. 


즐거운 학교 만들기


  저는 자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좋은 것은 잠이 안 오는 것, 잠을 못 자는 것이지요. 그래도 잠이 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다만 학교생활이 너무너무 기니까 여러분이 학교에서 재미있는 것들을 조금 찾아내면 좋겠습니다.


  의상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은 선생님의 패션을 분석하고, 선생님들은 주로 어떤 옷을 입는가, 왜 그럴까? 직업적 특성이 의류 선택에 미치는 영향은?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노래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은 친구들을 위해서 오늘 배운 것을 노래 가사나 랩으로 만들어서 반 친구들에게 만들어 주면 영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잠 때문에 벌점이 너무 많은 친구들은 학교 교칙에 대해 다시 논의해보자고 학생회에 건의를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졸고 있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의 삶이 조금은 더 재미있어지면 좋겠습니다. 교육감이나 교육부 장관처럼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께 매일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이런 수업을 만들면 아이들이 안 자고 재미있어할 것 같아요, 우리 이거 꼭 필요한 수업이에요.”하고 말입니다.


  의사도 못 깨우는 친구도 자신이 흥미를 가지는 것, 재미있는 것에는 일어납니다. 학교에 BTS가 오면 누가 자고 있을까요. 그날은 아파서 보건실 가는 친구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학교생활이 재미있어지기를, 그리고 여러분 스스로도 재미있는 것을 찾아가며 나 자신에 대해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도 변화할 수 있도록 쌤들도 노력하겠지만 청소년기의 시간들이 소소한 행복과 재미로 채워지면 좋겠습니다.

이전 05화 우리도 저녁이 필요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