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인우 Jan 22. 2020

우리도 저녁이 필요해요.

  “밤 10시 이후, 인형 뽑기방 어찌하오리까”


  몇 년 전 신문 기사 제목입니다. 지금은 시들해졌는데 한창 인기가 있던 인형 뽑기방에 관한 기사였지요. 인형 뽑기방에 엄청 큰 문제가 있나 싶어 기사를 읽었습니다. 밤 10시 이후에도 청소년들이 인형 뽑기방에 들어올 수 있어서 취객들이랑 시비가 붙기도 하며, 가끔 기계에 손을 넣어 인형을 훔쳐가는 청소년도 있어 문제라는 기사였습니다. 밤 10시 이후에 청소년들이 인형 뽑기방에 들어올 수 없게 막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기사였지요.


  대체 뭐가 문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학생들의 학원이 끝나면 밤 9시, 10시가 됩니다. 고등학교는 야자도 10시나 11시쯤에 끝납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그제야 조금 놀다가 집에 들어가겠지요. 돈도 별로 없고, 그 시간에 청소년들이 출입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으니 인형 뽑기를 많이 하나 봅니다.


  저는 좀 의아했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술을 마시고 청소년들에게 시비를 거는 어른이 잘못을 한 걸까요, 아니면 인형을 뽑는 청소년들이 잘못을 한 걸까요? 무슨 문제가 생기면 왜 항상 청소년을 바꾸려고 할까요? 한 번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청소년들이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난리입니다. 청소년은 무조건 밤에 다니면 안 된다면서요. 청소년들이 취객이나 다른 어른들과 시비가 붙는 문제를 예방하고 싶으면 오히려 이렇게 해도 되지 않나요?


  “밤 10시 이후, 만 20세 이상 인형 뽑기방 출입 금지” 또는 “취객 출입 금지”


  왜 인형을 뽑는 게 밤 10시 이후에 청소년에게는 제한되어야 할까요? 우리는 청소년의 모든 행동을 제한하는 것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동과 청소년의 행동이 위험하지 않은 행동이라면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아동과 청소년도 자유로울 권리가 있습니다. 특히 그들은 ‘재미있게 놀’ 권리가 있습니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고, 이후에 학원도 가야 하는 우리나라의 아동과 청소년은 놀 시간도, 놀 장소도 없습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모여 다니면 무조건 비행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눈을 세모꼴로 뜨고 쳐다보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청소년들을 어른들은 통제의 대상으로만 대합니다. 그러니 더욱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안 보는 곳에 숨어서 놀게 되지요.


떠든 아이


  우리는 모두 놀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놀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저는 수업시간에 모둠활동을 할 때에 학생들의 활동을 크게 제한하지 않습니다. 해야 할 몇 가지만 명확하게 가이드라인을 줍니다. 학생들은 한참을 떠든답니다. 어제 먹은 떡볶이가 맛이 있었고, 누구네 집에 가서 라면을 끓여 먹었고, 나는 왜 안 데려갔느냐고 하고, 학원 선생님 욕도 하고, 누구는 차였다더라 등등 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그 말을 다 하고 나면 학생들은 자기 할 일을 합니다. 교과서를 찾고,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면서 프랑스혁명의 내용을 찾고, 대본을 쓰기 시작하지요. 어떤 캐릭터를 만들지 싸우기도 하고, 누가 무슨 역할을 맡을지 정하면서 집중을 합니다. 또 집중을 하면 쉬는 시간이 된지도 모르고 집중을 하기도 하구요.


  학생들은 학교에 오면 친구들이 있어서 좋습니다. 반갑고 해야 할 말이 많은데 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침 8시부터 1교시가 시작되고, 쉬는 시간 10분은 화장실 가고, 이동 수업하는데 다 쓰고 맙니다. 지각하면 담임 선생님께 불려 가기도 해야 하구요.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면 되겠지만 4교시까지 어떻게 기다릴까요. 당연히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 수업 시간에 ‘떠드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말을 다 하고 나면 딱히 이 아이들도 더 할 말이 없어서 오히려 수업에 집중을 하게 된답니다.


  아이들이 친구를 만나서 안부를 묻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학교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어른들은 그것이 매우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결국 ‘관계’이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회사를 가야 하기 때문에 관계를 포기하라고, 잡담을 하지 말라고 강요합니다. 제 생각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시간만큼 유익한 시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입시용 수업은 대체가 가능합니다. 요즘 얼마나 좋은 동영상 강의가 많은가요.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고 입시 학원을 다니면 3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지 않고도 금방 대학에 갈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학교에 옵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에 지식을 얻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친구들과 놀면서 관계를 형성해 가는 법도 배웁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랍니다.


노는 권리


  어른들이 절대 말하지 않는 비밀을 하나 알려줄게요. 어른들이 그토록 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좋은 대학에 가도 불행한 아이들은 여전히 불행합니다. 교육심리학 시간에 어떤 학생이 그랬습니다. “저는 한 번도 놀아본 적이 없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공부는 엄청 잘하는데 노는 걸 배운 적이 없어요. 노는 걸 배우고 싶어요.” 학생이 나중에 조금 울먹거렸고, 우리는 모두 진지하게 들었습니다. 여기에 공감하는 학생도 꽤 있었지요. 저는 재수강이라서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보다는 나이가 많았는데 후배들이 측은했습니다. 선배들인 우리 몇 명이 노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지요. 그런데 나이가 제일 많은 선배가 그러더군요. “그냥 놀아. 뭘 배우려고 하지 말고.” 그 학생은 이제 삼십 대가 되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잘 놀 수 있게 되었을까요?


  우리 아이들에게 저녁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른들도 퇴근 시간 넘어서 일 시키는 상사 진짜 싫거든요. 어른들도 ‘칼퇴’라는 말이 사라지면 좋겠고 자연스레 정시에 ‘퇴근’하고 싶습니다. 어른들도 그러한데 아이들은 어떨까요? 저는 우리 아이들도 학교가 끝나면 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아이들을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 테니까요. 그래야 어른들도 건강하고 행복해질 테니까요.


  아이들이 놀 시간과 공간을 우리가 조금 더 힘을 보태어 만들어 주면 좋겠습니다. 특히 가난한 아이들도 놀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면 좋겠습니다.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놀이터를 갈 수 없는 시대에 사는 것이 저는 무척 괴롭습니다. 우리 어릴 때는 골목이 놀이터였고, 돌멩이로 바닥에 선만 몇 개 그리면 금방 땅따먹기를 할 수 있었고, 고무줄 하나만 있어도 하루 종일 놀았었는데 우리 아이들도 그런 추억을 만들 권리가 있는 게 아닐까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의무는 아닐까요?


  아이들도 저녁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전 04화 우리 때문에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는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