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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Jan 20. 2020

영화 보는 과제를 내주세요.

 영화 감상문 수행평가라니


“우리 애들한테 영화 암살 보고 감상문 내는 수행평가를 했더니 너무 좋아해.”


  강남의 한 학교 선생님이 한국사 교육과정 연수가 끝나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의아한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수행평가를 내도 될까? 영화를 보면 돈도 들고, 시간도 따로 내야 하고, 강남에 있는 학교에서 그렇게 시간을 따로 내야 하는 수행평가를 하면 아이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제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새, 선생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 애들은 영화 볼 시간이 없잖아. 너무 바빠. 학교 끝나자마자 학원을 몇 개나 다니는지…. 그래서 이번에 암살 개봉해서 수행평가 내줬더니 애들이 막 너무 고맙다고 하는 거야. 영화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구. 수행평가라고 해서 엄마가 보게 해줬다고 말이야.”


너무 바쁜 아이들


  아! 아이들이 영화 한 편을 볼 시간이 없구나. 조금도 놀 시간이 없구나. 갑자기 그 전 해에 학원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대치동에 갔던 생각이 났습니다. 바쁜 친구를 위해 학원 근처 스타벅스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두 잔 시키고는 잠깐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많게 봐도 고1, 그러나 역시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음료는 안 시키고 수학 문제를 열심히 풀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앳된 얼굴인데 수학 문제는 고2 또는 고3 과정의 문제였습니다. 문제도 잘 풉니다. 처음에는 앉을 데가 없어서 자리를 찾다가 음료도 없이 문제를 풀고 있는 아이를 조금 짜증난 표정으로 보고 있었는데 이 더운 여름에, 그것도 방학에 수학 문제를 저리 빠르게 풀어야 하다니 좀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 커피가 나올 즈음에 아이는 문제를 다 풀었는지 가방에 문제집을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서 제일 비싸고 아주 달달한 프라푸치노를 시켜서는 가지고 나갔습니다. 아마도 학원 시간이 다 되었나 봅니다. 아까 푼 것은 학원 과제였겠지요.


  아이가 터덜터덜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프라푸치노를 주문하는 1~2초 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교과서 살 돈도 없는데 하는 푸념과 불평을 잠깐 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편견이지요. 아이는 저 프라푸치노가 없으면 아마 학원에 있는 시간이 지옥 같은 시간일 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들이 보기에는 좋은 집에 살고, 부모님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 좋은 학원에 다니는 그 아이들은 어쩌면 누구보다도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질투를 하기도 하구요.


  우리나라의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입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가장 큰 고민 1위는 압도적으로 성적입니다. 왜 이토록 아이들은 성적에 매달려야 하고, 행복하지 못 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할까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학업 성취도는 매우 높고, 특히 수학은 거의 매 해 1등을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청소년들이 제일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과목이지요. 사교육 등을 통해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많은 시간을 반복하여 문제를 푸는 연습을 했기 때문에 1등을 했지만 2, 3등을 한 나라들의 학생들이 하는 학습량과 비교하면 한국 학생들의 공부하는 시간적인 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느라 놀지 못 하는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고, 때문에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 많은 지역의 학교들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사인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부유한 아이들의 마음 역시 얼마나 힘든지 참 많이 듣게 됩니다. 숨 쉴 틈도 없이 부모님이 짜 준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아이들도 많고, 원하지 않지만 외국으로 유학을 가야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친구 관계도 부모님에 의해 제한을 받을 때가 많고, 수행평가 1점에 목숨을 거는 아이들도 많지요. 이렇게 큰 스트레스 속에서 노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부모님이 정해준 목표를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써버리는 아이들은 행복감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 합니다.


서울대는 행복의 열쇠일까?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에, 자신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지 못 합니다. 쉼과 놀이가 아이들이 클 때에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어른들은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늘 1등이 되기를 강요받으며 나의 마음보다는 타인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대학에 가면 우리는 쉴 수 있을까요? 아니요. 저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을 졸업했고, 그곳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명문대에 가면 끝날 줄 알았는데 어른들은 이제 대기업에 취업을 준비하거나 고시를 패스해야 한다고 종용합니다. 대학에 간 아이들은 어른이 될 시간도 가지지 못 하고 또 부모님이 짜 준 스케줄대로 움직입니다. 저는 수업을 땡땡이 치고 잔디밭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낮잠을 자며 캠퍼스에서 낭만을 즐기던 거의 마지막 세대였고, 제 후배들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취업을 준비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스펙을 쌓는 것과 관련이 없는 활동들은 하지 못 합니다. 학점 따기에 열을 올리고 봉사활동도 스펙을 쌓기 위해 하지요. 이렇게 열심히 스펙을 쌓아서 좋은 회사에 취업을 하면 부모님의 간섭이 끝날까요? 취업을 하면 좋은 조건을 가진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고 합니다. 때때로 어떤 부모님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도록 강요하기도 하구요,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는지 혹은 그 집 재산이 많은지 등의 조건을 통과한 사람과 결혼 적령기에 결혼을 하라고 하지요. 부모님의 간섭은 결혼을 하면 과연 끝이 나는 걸까요? 우리는 언제 놀 수가 있고, 언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지금  순간


  ‘지금 이 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그렇게 입기 싫던 교복도 지나고 나면 다시 입어보고 싶기도 하고, 친구와 신나게 수다를 떨 수 있었던 즉석 떡볶이 집이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로 바뀌어서 다시는 갈 수 없게 되기도 하구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다시는 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짝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도, 친구와 야자를 땡땡이 치고 햄버거를 먹는 것도 지금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또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고 맙니다.  


  마음 속의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타인이 바라보는 멋진 삶을 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행복하지 않은 삶은 얼마나 괴로운 삶일까요?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떡볶이와 순대를 먹으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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