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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Jan 31. 2020

운동을 그만하고 싶어요.

  어느 학교를 가나 남학생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축구입니다. 점심시간에 옷도 갈아입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고 축구를 하고는 교실에서 더워 죽겠다면서 에어컨이나 선풍기 앞에 몰려있지요. 그런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면 안 더워~”라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데요.


훈련 있어요


  그러나 운동부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운동부 학생들은 운동을 무척 좋아할 것 같지만 실은 운동부 학생들이라고 언제나 운동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는 매일의 고된 훈련을 무척이나 힘들어합니다. 운동부 학생들이 제일 슬퍼하는 날이 시험 마지막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가 신이 나서 영화를 보니, PC방을 가니, 게임을 하러 가니, 데이트를 가니 다들 그렇게 어디를 갑니다. 저도 아무 생각 없이 운동부 학생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었는데 너무 슬픈 눈을 하는 겁니다. “훈련 있어요.”하고 돌아서는 그 넓고 큰 어깨가 얼마나 얼마나 슬프고 우울해 보였는지요.


  저는 운동부가 있는 중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들도 많이 배출한 학교였습니다. 그 유명한 여자 핸드볼! 올림픽 효도 종목이지만, 올림픽 때만 보는 비인기 종목이지요. 직접 가서 보면 엄청 스피디하고 재미있는데 왜 비인기 종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익숙하지 않아서일까요? 핸드볼 부 친구들은 언제나 잠을 자고 있었어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강도 높은 훈련이 매일 반복되었고, 잘 시간도 부족했던 핸드볼 부 친구들은 오전에는 자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같은 반이어도 친구를 만들 시간도 없었습니다. 오전 수업 시간에는 엎드려 자고, 점심 먹고, 오후에는 훈련을 갔습니다. 지금은 운동부 학생들의 수업권이 보장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수업도 못 듣고 훈련을 했습니다. 학생 선수들은 “학생”이기도 하지만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나 운동 그만하고 싶어


  저는 오지라퍼(제가 오지랖이 넓다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입니다.)였기 때문에 핸드볼 부 선수인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냈습니다. 자고 있는데 깨워가지고 말 걸고, 안 물어본 시험 범위 가르쳐주고, 공부하라고 요약한 것도 프린트해서 주고 그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안물안궁에 짜증 났을 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친구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었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농담도 건네고 했지요. 그런데 2학년 때 같은 반인 친구가 의외의 말을 했습니다.


  “나 운동 그만하고 싶어.”

  “왜?”


  어쩌면 저는 그 친구들의 길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고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청소년기의 우리들은 모두 앞날에 대한 고민이 많고, 심지어 성적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더 잘 드러나는 운동부 친구들은 더욱 그러하지요. 특히 핸드볼처럼 생활체육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운동의 경우에는 진로의 폭이 더 좁았습니다.


  “그럼 뭐 하고 싶어?”

  “나는 모델이 되고 싶어.”

  “우와~ 너 모델 잘 어울려. 얼굴도 예쁘고, 표정도 좋고, 키도 크잖아!”


  신이 난 친구는 그 자리에서 워킹을 해 보여줬습니다. 얼마나 예쁘던지요. 그래서 그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친구의 표정이 너무 예쁘고 멋있었거든요. 그 큰 눈에서 행복이 마구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는 운동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그만하고 싶은데 지금까지 부모님이 뒷바라지를 해주신 것 때문에 차마 그만둘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그만두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 친구가 모델이 되었는지, 핸드볼 선수가 되었는지, 혹은 다른 길을 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길이 어떤 길이든 그 친구가 좋아하는 일을 지금도 하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운동부 선수들은 대개 초등학교 때 선발이 되고, 중고등학교 내내 선수 생활을 하는데 이 중에서도 성적이 좋은 학생들만 대학 진학이나 프로 선수 입단이 가능합니다. 대체로 순위가 크게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로를 예측하려면 고등학생은 되어야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쭉 운동만 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너는 이 전공으로 대학을 갈 수가 없고, 프로로 뛸 수도 없다고 하면 학생들은 얼마나 막막할까요.


  교사가 되니 그 문제들이 더욱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운동 성적으로 대학을 못 갈 것 같은 친구들이 2학년 때 많이들 운동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래서 전학을 가야 하는 친구도 있었고, 마음을 못 잡고 방황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모두 다 아픈 손가락들이었습니다. 아직 앞날이 훨씬 길겠으나 인생의 절반 이상을 운동만 한 친구들이 대입을 1년 앞두고 그만두어야 하는 그 심정이 얼마나 아플지, 얼마나 방황하고 있는지 너무 잘 느껴졌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했던 운동을 하지는 못 해도 사회체육과라든지 체육 쪽 진로를 하는 것은 어떠한가 하고 권하였지만 운동을 하던 학생들은 아예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너무 많이 지친 것이지요. 강도 높은 훈련과 성과를 중시하는 체육계의 문화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몸만 지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실은 마음이 지쳐서 운동을 더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모든 면에서 성장 위주, 성과 위주로 달려왔습니다. 6․25 전쟁 이후로 앞으로 직진하여 달리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는 것처럼 달렸습니다.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내버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희생시키면서 내달렸습니다. 경제대국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이 위험한 현장으로 내몰리거나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혹은 다른 나라에 파병을 갔다가 다치거나 죽기도 하는 등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스포츠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스포츠계는 더욱 치열하였습니다. 1등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2등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1등을 하지 못하면 지탄을 받았습니다. 2등도 그러할진대 3등 이하의 선수들은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성과 중심주의 속에서 선수들은 때때로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때때로’라는 표현을 썼지만 실은 아주 일상적이었지요.


  앞에서 잠깐 언급하였지만 운동부 선수들의 수업권 보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운동부 학생들에게는 대체로 자유로운 동아리 활동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하러 학교 오는 학생들도 있는데 이 친구들은 자신이 소속된 운동부가 동아리이기도 했습니다. 방과 후 시간에는 내내 훈련을 하니 재미있는 학교생활을 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재미있는 학교생활은 사치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적인 생활이 불가하기도 하였습니다. 감독이나 코치 선생님, 혹은 선배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듣거나 폭행을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한 제자 혹은 후배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말로 묵인되었습니다.


  인기 스포츠에만 지원이 치중되어 있고 생활체육 분야에 대한 지원 부족 같은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폭력이 묵인되어 왔고, 학생 선수들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였습니다. 그것은 비단 스포츠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친 문제이지요.


청소년 선수들을 응원합니다


  학생들은 처음 스포츠 분야에 발을 내디뎠을 때, 이것이 재미있어서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재능이 있어서 선수로 선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재능 있는 선수들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으로 인해 학창 시절을 빼앗겼고, 행복한 일상을 빼앗겼습니다. 1등을 하기 위해서라면 올림픽을 나가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것들이 정당화되어도 될까요?


  저는 운동이 조금 더 즐거워지면 좋겠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체육 시간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저는 체육을 못 했고,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체육 선생님들께 많이 맞기도 하였고, 그래서 체육이 더 싫어졌지요. 지금은 운동을 더욱 못 하지만 지금은 운동이 싫지는 않습니다. 운동하며 땀을 흘리는 것은 때때로 스트레스를 푸는데 도움이 되고, 재미도 있습니다. 성적을 매기지 않고,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운동부 선수에게 성적을 안 매길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자행되었던 많은 폭력과 그들의 즐거운 삶을 빼앗는 것에는 맹렬히 반대합니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조금 더 따거나 덜 딴다고 큰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포츠를 조금 더 재미있게 즐겼으면, 올림픽 정신처럼 평화와 화합을 생각하는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운동부 선수들도 음악이나 연극이나 미술 같은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고, 스스로 운동이 더욱 즐거워지도록 교육 환경이 바뀌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스포츠에 대한 인식도 이제 성과 위주에서 행복을 위한 것으로 바뀌어나가면 좋겠습니다. 어린이, 청소년 선수들에게 더욱 관심 가져 주시고, 또 함께 응원하면 좋겠습니다.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듯이 그렇게 큰 목소리로 운동부 학생들의 수업권과 동아리 선택권과 즐겁게 운동할 권리에 대해 함께 응원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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