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인우 Jan 18. 2020

우리 때문에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는대요

중2병의 진실

2


  중2병. 언제부턴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말입니다.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친구들이 애들 때문에 정말 미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다 똑같지 뭘 유별나게 힘들다고 하냐고 했었답니다. 제가 중학교에 가보기 전에는 말입니다.


  남자 중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일단 1, 2, 3학년이 너무나 달라서 재미가 있습니다. 사실 고등학생들은 1학년과 3학년은 학업에 임하는 태도라든지 생각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만 언뜻 보아서는 잘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중학생들은 1학년과 3학년이 키 차이도, 생각의 차이도 무척 많이 납니다. 1학년 신입생들은 정말이지 너무나 귀엽습니다. 자기보다 훨씬 큰 교복을 입고는 똘망똘망, 초롱초롱한 눈으로 1학년 3반 교실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요. 30년도 넘게 학교에서 일한 교장선생님도 정말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교실을 가르쳐 줍니다.


  저는 2학년과 3학년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한국사와 세계사 수업을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정신이 없는데 2학년과 3학년 교실은 무척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3학년들은 제법 키가 크고, 또 학교에서 최고 학년인지라 텃세도 심했지요. 그러나 제법 성숙한 느낌이 났습니다. 몇몇 짓궂은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을 꽤 열심히 들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2학년은 정말이지 에너지가 넘쳐났습니다. 2학년 교실은 5층에 있었는데 올라가면서라도 학생들의 힘이 빠지라고 제일 꼭대기 층에 있답니다. 저는 잘못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힘이 하나도 빠지지 않았고, 선생님들이 올라가다 지쳤는데 너무나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지요.


  오선생님이 갑자기 허리 디스크가 파열이 되어서 제가 임시 담임을 한 달 정도 하게 되었습니다. 제일 말썽꾸러기 반이었지요. 쉬는 시간 그 잠깐 사이에 얼마나 스펙터클한 일들이 넘치던지! 한 달이 일 년 같았어요. 친구들과 생각하는 것이 조금 달라 놀림을 받던 A가 화가 나서 B를 때렸는데, 그만 A의 팔이 똑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B는 그냥 좀 아팠다네요. 아직 중학생들은 자기 힘이 얼마나 센 지도 잘 모르고,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 지도 잘 모르는 거지요. 제일 발 빠른 아이가 교무실로 뛰어왔고, 저는 또 뛰어올라갔고,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아이를 데리고 얼른 보건실에 갔습니다. 팔뼈가 완전히 두 동강이 나서 보건실에서 우선 부목을 대고 바로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구요. 하선생님이 운전을 해주어서 빨리 갈 수가 있었지요. 어머니는 생각보다 담담하셨습니다. 아들이 맞은 게 아니라 때려서 사실은 기쁘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많이 치고받고 하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다음 날은 모범생이라 불리던 C가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네요. 대체 계단을 내려가다가 왜 다리가 부러질까요? 계단이 움직이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그 다음 날은 축구부원인 D가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다가 중요한 부분을 공에 맞아 너무 아파서 그런데 보건실에 가도 되냐고 물으러 교무실에 와서는 눈물을 찔끔 참고 있네요. 제가 울고 싶었어요. 엉엉. 너희들 왜 맨날 다치니?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청룡열차를 타듯이 스펙터클한 일이 일어나는 중학생들에게 왜 감정을 못 다스리느냐고 묻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다투기라도 하는 날이면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며 혼을 내지요. 그런데 제 기억에 저의 열다섯도 뭐든지 감정이 넘치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미움도, 사랑도... 친구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였죠. 국어 시간에 그런 시를 지었던 기억도 나네요.


줄리엣도 2!


  저는 중학생 때 남자 친구는 없었지만 아마 그 나이에 사랑을 했다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문학 작품에 나오는 춘향전의 이도령은 이팔청춘 열여섯이었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열여섯, 열네 살이었습니다. 작가들은 왜 주인공 나이를 이렇게 어리게 했을까요? 아마 사랑에 목숨을 걸 나이가 이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줄리엣이 한국인이면 중2겠지요. 줄리엣이 스물다섯이었으면 독약은 먹지 않았을 겁니다. 어떻게든 도망을 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줄리엣이 서른다섯이었다면 로미오를 만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가 몬터규 가문임을 안 순간 만남을 포기했을 거예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결혼을 하기에 장애물이 너무 많을 것 같다고 판단되는 상대를 삼십 대는 잘 만나려고 하지 않거든요. 나이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하는 이유는 호르몬의 영향도 있고 많은 경험이 쌓이면서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십 대는 감정이 한없이 넘쳐나는 때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청소년들을 나무라기만 합니다. 꼭 혼나야만 할 일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이상한 것은, 어른들은 가까이에 있는 청소년은 혼을 내지만 문학 속의 주인공들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냅니다. 온 인류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아름답다고 합니다. 철부지의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고, 슬픈 사랑 이야기라고 한답니다. 어쩌면 어른들은 부러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들도 모두 그 열정적이었던 때를 지나왔고, 지금은 그 순수한 감정을, 열정을 품을 수가 없지요. 그러니 부러워서 질투가 나는 걸로 해둘까요?


반짝반짝 열다섯


  지금의 감정들을 잘 누리고, 또 잘 기억해 두세요. 그것은 십 대의 특권입니다. 다른 조건이나 환경들을 생각하지 않고 무언가를 잘 감각할 수 있다는 것은 청춘이 가지는 가장 큰 특권입니다.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추억을 선물할 것입니다. 예컨대 첫사랑 같은 것을 말입니다. 감정을 너무 꾹꾹 누르지 마세요. 중2병은 병이 아니지만 감정을 눌러대면 그것은 병이 된답니다. 감정이 조금 넘치는 것 같아도 주변 관계를 아주 크게 해치지 않는다면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까르르 웃고, 엉엉 울고, 화도 내고, 우울해졌다가 다음날이면 또 행복해지는 그때의 그 많은 감정들을 잘 누리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감정이 크면 상처도 많이 받겠죠? 상처를 받는 순간들을 겪고,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감정을 조절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 받았던 그 순간들도 나를 성장시키는 추억이 되었음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러나 너무 큰 상처는 나를 성장시키지 않고, 때때로 성장을 멈추게 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추억이 아니라 큰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너무 큰 상처는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나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줄 것 같은 사람 옆에 있지 마세요. 나는 열다섯, 열여섯의 친구들이 건강하게 자라면 좋겠습니다.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해도 좋습니다. 도움이 필요하거든 언제나 손을 내미세요. 옆에 있는 선한 어른이 한 명쯤은 있을 것이고, 여러분이 내민 손을 잡아줄 것입니다.


  중2병은 병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시간을 예쁘게 잘 누리고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드세요. 공부 잠깐 안 해도, 잠깐 방황해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방황해도 흔들려도 반짝반짝 빛나는 멋진 열다섯 살, 중2니까요!

이전 03화 저요! 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