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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Jan 16. 2020

저요! 저요!

베테랑 학생은 말하지 않는다.

저요! 저요!


  이제는 종영한 방송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이 유치원에 갔습니다. 아, 그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유치원 선생님이라니. 정준하씨의 재미있는 분장이나 박명수씨의 어색한 인사를 보며 한참 깔깔대며 웃었답니다. 그러다 문득, 제 눈을 잡아끄는 모습이 TV 화면에 잡힙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무슨 질문을 하면 아주 열심히 손을 듭니다. “저요!”, “저요! 제가 먼저 손들었어요.”


  저는 충격을 받았답니다. 고등학생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거든요. 시켜도 대답을 안 하는 경우가 많구요. TV 속 유치원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 똑똑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아주 야무지게, 똑 부러지게 이야기를 합니다. 여섯 살, 일곱 살 난 아이들이 제 생각을 곧잘 말하는데, 열일곱 살 난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말할 줄 모릅니다. 가끔 어떤 때는 자기 생각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10년 동안,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틀리는 것이 싫은 학생 베테랑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과목은 교과서가 정해져 있고, 교과서 내용을 중심으로 교사가 강의식 수업을 하며 그 내용을 충실히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해 시험을 보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치원에서는 자기 의견을 열심히 말하던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가서 내 의견이 교과서의 내용과 ‘다른’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선생님은 그것을 ‘틀렸다’고 말합니다. 점차 교과서의 내용이 많아지는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그 일은 더욱 자주 일어납니다. 그리고 친구들의 웃음을 통해 ‘틀린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학생들은 점차 틀리고 싶지 않습니다. 더욱 정확하게는 부끄러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말하지 않게 됩니다. 칭찬을 받지는 않아도 적어도 부끄러운 일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학교를 10년 넘게 다닌 학생 베테랑이 된 고등학생들은 수업 시간에는 아예 말을 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하고 있는 말 중에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받아 적을 뿐이지요. 그러니까 학습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나의 뇌에 적용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학생들은 수동적인 사람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정답을 알고 싶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가야 하니 자기 생각을 또 쓰라네요. 그리고 한참을 길게 썼더니 그렇게 쓰면 대학을 못 간다며 빨간 펜으로 잔뜩 첨삭을 해줍니다. 이젠 무엇이 내 생각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청소년들은 정말로 생각이 없을까요? 아니요.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궁금한 것도 많고,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것도 모르냐며 면박을 당할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이죠. 저는 학생들의 입을 열기 위해 매우 유치하지만 제법 효과적인 것을 꺼내 듭니다. 사탕이지요. 처음에는 사탕의 유혹에 조금씩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그렇게 생각했구나.”, “오, 좋은 생각이야.”, “그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겠네!”하고 잘 들어주니 나중에는 사탕이 없이도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슬슬 질문도 많이 하지요. 가끔 진도를 못 나가 애를 먹기도 하지만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역사야!


  2016년, 촛불집회로 온 나라가 뜨거울 때, 마침 우리는 시민혁명 단원을 배우고 있었고, 그것을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대본을 쓰면서 학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어떤 한 학생이 질문을 매우 집요하게 계속 했는데 다른 친구들이 뭘 그렇게 깊이 파고드냐면서 면박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이 말했지요. “이게 역사야.” 순간 저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했습니다. 청출어람이네요. 그 날은 교과서를 덮고 민주주의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날카로운 질문들과 이야기들이 쏟아졌습니다. 학생들이 이토록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니 참 놀랍다고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친구에게 말했답니다. 그런데 중학교도 난리라네요. 중2병에 걸린 줄로만 알았더니 중학생들도 사회 문제에 대해 나름의 생각과 고민들이 많더라고 친구가 말해주었답니다.


  청소년 여러분이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틀려도 괜찮답니다. 우리 중 누구도 모든 정답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없고, 그 정답이라는 것도 새로운 학설이 나오면 또 바뀌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일들은 정답이라는 게 아예 없을 때가 많답니다. 친구들이 이야기할 때 잘 들어주세요. 나와 생각이 달라도, 혹은 틀렸을지라도 비난하지 말아주세요. 잘 듣고, 또 내 생각을 잘 이야기하면 됩니다.


떠들어도 괜찮아?!


  저는 가끔 학생들을 마음껏 떠들도록 허용해준답니다. 모둠별 활동을 하면 쓸데없는 이야기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더욱 많이 하지요. 안부를 묻고, 오늘 급식 메뉴에 대한 논평을 하고, 아이돌 그룹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한참 떠들고 나면 학생들은 다시 주제로 돌아온답니다. 사실은 친구들끼리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오늘 다 못 했던 거예요. 어제 있었던 일 중에 재미있는 일도 이야기해야 하고, 어제 친구가 고백한다고 했는데 결과도 들어야 하고 청소년들은 몹시 바쁘거든요. 그런데 그럴 시간도 없이 50분 공부하고, 10분 쉬는 중에 화장실 갔다 오고 나면 이야기할 시간이 부족했던 겁니다. 친교의 시간이 지나면 학생들은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합니다.


  떠들어도 괜찮아요. 사실은 그게 학교에서 해야 할 제일 중요한 일이거든요. 친구가 어젯밤에 차였다면 빨리 위로해주어야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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