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에게
또래 힐링 캠프 시간에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갑자기 많은 아이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엉엉 우는 여학생들도 있습니다. 남학생들도 눈물을 숨기지 못 합니다. 어떤 남학생은 무슨 사연이 있는지 펑펑 울어서 친구가 등을 도닥여줍니다. 우리 아이들이 17년, 18년을 얼마나 열심히, 또 힘들게 살아왔는지 느껴져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이 말은 왜 아이들을 울렸을까요?
“네가 뭐가 힘들어서.”
“엄마가 다 해 주잖아. 그런데 이것 밖에 못 해?”
엄마는, 아빠는, 그리고 선생님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모두 1등을 했던 모범생일까요? 어른들의 이런 말에 아이들은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은 내가 겪는 일들을 별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어릴 땐 다 그런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정말 그럴까요?
실은,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모두 마음속에 큰 상처 한두 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받은 것들이거나 혹은 어린 시절에 치유되지 못한 곳에 더 큰 상처를 받아 생긴 것들입니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큰 사건들이 생기고, 더 큰 상처들을 받게 되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어릴 때 받았던 상처들까지는 잘 기억을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린, 혹은 나보다 젊은 사람들의 문제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되나 봅니다.
공부는 조금 더 하면 되는 것이고, 친구 관계는 조금 더 노력하면 되는 것이고, 취업은 스펙을 더 쌓으면 되는 것이고, 결혼은 누구랑 하나 다 똑같으니 빨리빨리 하라고 합니다. 실은, 그렇지 않았으면서요. 참 많이 고민하고, 눈물 흘린 시간들을 겪으며 더 단단해지고, 성장하는 과정을 겪었지만 어른들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금방 잊어버립니다. 역시 개구리는 올챙이적 생각을 못 하나봅니다. 어쩌면 어른들은 부끄러운건 아닐까요? 아이들에게 나도 상처받은 적이 있다고 고백을 하는 것이 말입니다.
아마도 어른들의 문제는 아이들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맞을 것입니다. 대출을 갚지 못하면 집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고, 이번에 승진을 못 하면 퇴직을 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이런 일들은 가정 전체가 흔들리는 일입니다. 이혼은 이성친구와 헤어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재산과 양육권을 가지고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가장 치열한 전투를 해야 합니다. 직장은 드라마처럼 로맨틱하지 않습니다. 총성 없는 전쟁터일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전쟁 같은 일상을 매일 보내고, 피곤에 찌들어 집에 오면 아이들의 문제는 내 문제에 비해 너무나 소박하거나 사소해 보입니다. 해결방법도 꽤 단순해 보이는데 아이들은 고민을 하지요. 그러나 어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어리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이요!
경험이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 여러 경험들이 쌓여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갑니다. 두 발로 걷기 위해서 아기들은 엄청나게 많이 넘어져야 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말하기까지 우리는 어마어마한 단어들을 아무렇게나 내뱉었습니다. 그 전에는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를 했었구요. 아직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이 일들은 무척 큰 일이고 두려운 일입니다. 돌바기 아기가 엄마에게 다섯 발자국을 떼는 것은 엄청나게 큰 일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 아기를 모두 응원했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여러 문제들에 당면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크고 두려운 일입니다. 주변의 응원과 지지가 필요하구요.
지금 몇 해를 살고 있든지, 정말 잘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힘든 일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은 쓸데없거나 사소한 것들이 아닙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마흔을 목전에 둔 저도 매일 해결되지 않을 고민들을 합니다. 환갑을 넘긴 부모님도 그러신 것 같습니다. 10대도, 20대도 그리고 60대, 70대, 80대도... 우리 모두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잘 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주 많은 청소년들을 만났습니다. 고민이 없는 청소년은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잘 웃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미소가 너무 예뻐서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항상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예쁘게 말하고, 친구들에게도 언제나 친절하고 잘 웃던 학생이었습니다. 고민 하나 없어 보이던 학생을 잃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왜 힘이 들면서 항상 웃었을까요? 이후로 저는 너무 자주 웃는 학생을 보면 유심히 그 눈동자를 바라보곤 합니다. 입은 웃을 수 있지만 눈동자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그때, 눈동자를 들여다보지 못해서 너무너무 미안합니다. 잘 살고 있다고 등 한 번 쓸어내려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면 더 깊은 대화가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대가 몇 해를 살아왔든,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든 당신은 이 말을 들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잘 살아왔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잘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당신은 잘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