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칭찬이 필요하다.
태현쌤 아기의 돌잔치에 갔습니다. 지금은 같은 학교에 있지 않으니 연락되는 쌤이 거의 없습니다. 제일 친했던 지민쌤이랑 둘이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전화를 해도 지민쌤이 받지 않습니다. 지민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오! 이런. 나중에 알고 보니 지민쌤이 새벽에 아파서 응급실에 갔다가 입원 중이었습니다.
하릴없이 혼자 아기 돌잔치에서 뻘쭘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제발 내 옆자리에 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아니면 이전에 다니던 학교 쌤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주기를 매우 바라면서요. 역시!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 아기 아버지의 친척들로 보이는 대가족이 저를 한가운데 놓고 양쪽에 앉으셨습니다. 오! 매우 난감합니다. 저는 뷔페에서 뜬 접시에 있는 음식을, 물론 맛있게 먹었습니다. 저는 원래 음식을 참 맛있게 먹거든요. 하지만 외로웠답니다. 밥 먹을 때 누구와도 말할 수 없는 것은 참 쓸쓸합니다.
제 옆의 아기가 모든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받습니다.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기는 그냥 밥을 먹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막 흘리면서요. 하지만 모든 어른들은 몹시 사랑스럽다는 눈빛을 보내면서 아이를 칭찬합니다. “아이구, 잘 먹네!”, “허~ 우리 **, 밥도 혼자 먹어요?”하고 대답도 없을 질문을 해댑니다. 몹시 부럽다가 이내 질투가 났습니다. 나도 완전 잘 먹고 있는데! 저야 말로 칭찬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저는 일가친척 없이 혼자 꿋꿋이 돌잔치에 와서도 이렇게 뷔페 접시를 두 접시나 비우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칭찬해 주지 않습니다.
잘 먹는다는 칭찬은 서너 살까지만 듣는 것 같습니다. 서른이 되면 잘 먹는다는 칭찬을 해주지 않더라구요. 오히려 그만 좀 먹고 몸매 관리를 하라고 타박을 받기 십상입니다. 어쨌든 오래 있을 수 없어 아기가 돌잡이를 하는 것을 보고, 황급히 나가는 길에도 굳이 태현쌤에게 묻습니다. “언니, 답례품 저도 하나 가져가도 돼요?” 태현쌤이 빵 터졌습니다. “어~ 물론이지. 가져가라고 놔둔 거야. 꼭 가져가!” 저는 축의금을 냈으니 답례품도 당당히 하나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돌잔치를 보면서 궁금증이 하나 생겼습니다. 왜 한 살 생일 때 제일 큰 축하를 받을까요? 아기는 하나도 기억을 못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마 엄마와 아빠에게 하는 축하와 격려겠지요. "아기를 1년이 되도록 잘 키웠구나, 그런데 이제부터 시작이야!"하고 말입니다. 금반지 같은 선물을 지금 받으면 무척 행복할 것 같은데 지금은 생일도 맹숭맹숭 지나가버리고 마네요. 여러분의 돌반지는 부모님이 잘 간직하고 계신가요? 저와 제 동생의 돌 반지들은 1998년 IMF를 이겨내기 위한 금 모으기 운동 때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IMF를 이겨낸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수많은 돌잔치를 갔었는데 유독 이 날의 일들이 또렷이 기억이 나는 것은 잔칫날 혼자 밥을 먹는 상황이 몹시 힘들었는데 때마침 옆에 앉은 아기가 칭찬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의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나의 아이들은 대개 열일곱 살이거나 열여덟 살, 열아홉 살입니다. 하루에 칭찬을 받는 일은 별로 없지요. 아니, 1년 중에 칭찬을 받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요? 벌점 말고, 상점을 받는 날은 아주 운이 좋은 날이지요. 나의 아이들은 언제 칭찬을 받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몇몇의 학생들을 빼고는 교실에서 칭찬을 받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짐했습니다. 작은 것에 대해서도 자주 칭찬을 해줘야지!
안 그래도 아기 취급을 해서 입을 뾰로통하게 내미는 아이들은, 작은 것에 칭찬을 받으니 처음에는 매우 어색해합니다. 사실 칭찬하면서 저도 몹시 어색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적응을 하지요. 그리고 알게 됩니다. 선생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구나.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칭찬도 잘해야지 못 하면 부작용이 있다는 데 그리 생각하니 칭찬하기도 너무 어렵습니다. 그냥 많이 좀 하면 안 되나요? 그래도 청소년들은 칭찬받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어릴 때에 비하면 말입니다. 그러니 어릴 때는 특별한 존재였던 것 같은데 이제는 너무나 평범한 존재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니, 성적표가 나오는 날에는 스스로가 너무 모자란 존재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칠판을 이렇게 깨끗하게 지우다니! 하고 감탄을 하면 칠판이 언제나 깨끗합니다. 수행평가에 겨우 두 줄을 쓰고는 그만 써도 되냐고 묻는 아이에게, “어머, 잘했는데, 조금만 더 써볼까? 선생님이 채점을 하려면 그래도 여기 반은 채워야 돼.”라고 말하면 아이의 입이 비죽 나오지만 열심히 뭐라도 쓰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지금도 칭찬을 받으면 좋습니다. 우리 부장 선생님이 “역시 우주인 선생님은 일은 참 잘한단 말이야!”라고 하거나, 아이들이 “선생님 수업은 진짜 재미있어요.”라고 하면 그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요. 그리고 가끔 어머니께 칭찬을 강요하기도 한답니다. “엄마, 우주인 밥 다 먹어쩌!” “아이구, 그래쩌? 잘했네~” 어머니는 서른이 넘은 딸도 칭찬을 해주십니다. 엄마는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고된 직업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칭찬에도 기분이 좋습니다. 사랑을 받는 게 느껴져서요. 그게 꼭 칭찬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작은 관심은 늘 나를 기쁘게 합니다.
돌잔치 이후로 가끔 급식 지도를 할 때, 학생들을 칭찬해봅니다. “잘 먹었네.”하고 말입니다. 아이들은 어색해하면서도 싱긋 웃지요. 그리고 실은 청소년들은 지금 잘하고 있답니다. 물론 이제 밥은 정말 잘 먹습니다. 가끔 더 먹어도 되냐고 물을 때 보면 약간 무서울 정도지요. 다른 것도 잘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잘하는 것도, 못 하는 것도, 고민이 많은 것도 모두 지금 해야 할 일이거든요. 아기가 밥을 먹는 것을 배우는 것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친구 관계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이성 친구에게 고백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모든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입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거기에서 배우고, 또 성장할 테니까요. 그러니 잘하고 있는 거지요.
어른들께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엄청 비싼 선물을 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하는 일을 다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지만요. 그냥 아이들이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세요. 때때로 아이들이 지금 무얼 느끼고 있는지 들어주세요. 처음 태어났을 때, 처음 일어섰을 때, 처음 말을 했을 때, 1개월, 3개월, 6개월 때 나의 아기에게 기울였던 작은 관심들 말입니다. 물론 청소년들에게 너무 과도한 관심은 다소 집착처럼 보이니까 어렵긴 어렵습니다. 그래도 가끔 칭찬해주세요. "우리 아들, 우리 딸, 밥 참 잘 먹네!" 하고 말입니다.
아, 물론 처음엔 어색할 수가 있답니다. “엄마, 어디 아파?” "아빠, 무슨 일 있어?" 하는 반응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렇게 대답해 주세요.
“아니. 엄마는, 아빠는 너를 사랑해!”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