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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Oct 07. 2021

5일장과 눈깔사탕

오일장


할머니가 "오일장 가자."고 하셨다. 

"할매, 오일장이 뭐야? 시장이야?"

"오일장이 오일장이재, 뭣은 뭐시여."


오일장은 무엇일까? 시장이란 다른 것일까?

오일장은 엄마랑 다녔던 서울의 작은 골목 시장과는 다른 것이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에도 동네마다 작은 골목 시장이 있었던 것 같다. 90년대가 되면서 큰 마트들이 동네로도 본격적으로 들어오지 않았나 싶다. 


골목 시장


골목 시장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많았다.

엄마는 만두를 항상 500원 어치만 샀다. 500원 어치의 만두는 엄마랑 나랑 동생이랑 먹기에 언제나 너무 적었다. 그리고 단무지는 더욱 부족했다. 빨간 앞치마를 입고 무뚝뚝하지만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만두를 담아 주는 아주머니가 가끔 무서워 보이기도 했지만 희뿌연 수증기와 만두 찌는 냄새가 가득한 만두가게가 참 좋았다. 만두를 사지 않더라도 만두가게를 지나며 가지게 되는 설렘이 좋았다.


엄마는 떡볶이도 500원 어치만 샀다. 동생은 맵다면서도 떡을 보리차에 씻어서 열심히 먹었다. 우리가 자주 갔던 스마일 떡볶이라는 옛날식 떡볶이집은 처음엔 포장마차였다가 나중엔 점포가 생겼다. 그 집 아이들이 우리 자매와 동갑이어서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는데 그 맛있는 떡볶이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니 언제나 부러웠던 것 같다. 


골목 시장에는 가끔 엄마가 사주는 아동복 파는 가게도 있고,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운동화를 파는 신발 가게도 있었다. 무엇보다 제일 좋아했던 곳은 시장 어귀에 있는 헌책방이었다. 동화책이 가득한 그곳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곳이었다. 실상은 나무 평상 앞에 어린이 동화책을 어지러이 늘어놓은 평범한 헌책방이었지만 나는 마치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동화책을 읽는 것에 몰두했다. 엄마는 책을 좋아하는 나를 별 수 없다는 듯 장을 보기 시작할 때 여기 앉혀 놓고, 끝나면 내 손을 질질 끌고 집에 가야만 했다. 책 한 권도 살 수가 없으니 엄마는 헌책방에 나를 맡기고 싶지 않았던 것 같지만 헌책방 아저씨는 책을 좋아하는 내가 귀여웠는지, 언젠가는 책을 한 권이라도 살 거라고 생각해서였는지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늘 좋아해주셨던 것 같다.


5일장


할머니와 나는 오일장이란 곳에 가기 위해 양간다리까지 걸어서 갔다. 이방마을에서 양간다리라고 부르는 양간리까지는 5리 정도 된다고 했다. 2km가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어린 나는 다리가 아팠다. 할머니는 그 먼 길을 가는데 무언가를 머리에 이고,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았다. 할머니는 농사지은 무언가를 팔았다. 너무 어려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고는 필요한 것 몇 가지를 사는 것 같았다.


오일장이라는 것은 시장이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매번 나서는 날이 5일, 10일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아! 역시 오일장은 5일장이었던 것이다. 시장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고, 시장도 너무 커서 하루종일 걸어다니는 것 같았다. 엄마는 힘들다고 하면 업어주기도 하고, 떡볶이도 사주는데 오일장이라는 시장에는 떡볶이 같은 것은 팔지 않았다. 대신 각종 나물과 농산물과 해산물이 있었다. 때때로 닭이 있기도 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무안은 갯벌이 있는 바닷가라 낙지가 많이 나서 낙지와 각종 생선들도 즐비했다. 


그 와중에 귀여운 강아지 몇 마리를 박스 안에 넣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아마도 집에서 낳은 강아지들을 이웃에 분양시키고도 남은 강아지들일 것이다. 젖을 갓 뗀 강아지들이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쪼그려 앉아 바라보다가 할머니 손에 이끌려 여기저기 다녔다. 하지만 할머니도 강아지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와 잠깐 쪼그려 앉아 강아지들을 보았다. 그러나 강아지를 집에 데려가지는 않았다. 


눈깔사탕


5일장에서 할머니는 엄청 큰 눈깔사탕을 사다가 꼭 망치로 깨서 손톱만큼만 주시곤 했다. 서울에서 사먹는 한입에 쏙 들어가는 사탕이 아니라 여섯 살 아이의 주먹만한 크기였던 것 같다. 그것을 종이 위에서 깨서 아주 작은 조각 하나만 주시곤 했다. 다른 조각들도 먹고 싶은데 이것들은 다시 종이에 싸여져서 이불 놓는 나무 위에 올려졌다. 노랑색과 흰색이나 분홍색과 흰색의 알록달록한 사탕의 색깔이 어린 나의 침샘을 더욱 자극한다.


우리 시골집은 나무 기둥에 흙으로 벽을 세우고 서까래 위에 새끼를 꼬아 볏짚을 얹은, 지금은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초가집이었다. 아마도 이 집을 지을 때, 만든 것 같은 나름의 선반이 있었는데 벽 옆으로 천장 쪽에 길고 곧은 나무 세 개를 박아 이불을 얹을 수 있게 하였다. 내가 아홉 살 때 집을 새로 지었으므로 나는 끝내 그 나무 위에 있는 눈깔사탕을 먹을 수는 없었다.


옛 장터에는 눈깔사탕, 오리사탕, 십리사탕 같은 것이 있었다. 가면서 살살 녹여먹으면 5리를 갈 수 있어서 5리 사탕, 10리를 갈 수 있으면 10리 사탕이라고 한다는데 매우 단단하고 큰 사탕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사탕들을 동그랗다고 해서 이런 사탕들을 눈깔사탕이라고도 한 것 같다. 어원까지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는데 아무튼 나는 아빠가 눈깔사탕이라고 부르는 그 사탕을 너무 좋아했다. 내 입에 한 입에 넣기에는 너무 커다란 사탕이어서 할머니는 이 사탕을 망치로 부숴주었다. 하지만 부수면 그 사탕을 모두 한 입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할머니는 그 사탕 조각을 너무 조금만 주어서 언제나 부족했고, 내 눈은 언제나 사탕을 싼 투박한 종이로 향했다.


할머니 없을 때 방 안에 있는 세간살이들을 동원하여 쌓고 까치발 디뎌 사탕을 꺼내려 하였으나 내 키로는 어림 없었다. 불행히 초가집에는 의자 같은 것은 없었다. 여섯살이었나 일곱살이었나... 여튼 못 먹으니 더 맛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내가 먹어본 사탕 중에 제일 맛있는 사탕은 그때 5일장에서 산 눈깔사탕이다.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협찬 제품으로 파리바게트의 사탕이 나왔었다. 5일장의 눈깔사탕 보다는 좀 작고 타원형이긴 하지만 그래도 옛 추억에 빠지기에는 충분한 모양이었다. 애신아씨 역할로 분한 김태리씨가 너무나 맛있게 사탕을 먹어서 PPL임을 알지만 제과점에서 사탕을 샀다. 


예전의 그맛이 아니다. 

아마도 할머니가 망치로 깨주지 않아서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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