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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우 Jul 23. 2021

카라멜 마키아토와 어른

“우주인, 우리 다음엔 카페에서 만날까?”

“아… 언니, 저 아직 커피를 못 마셔요…”


왠지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게 부끄러웠던 스무 살. 커피를 마실 수 있어야 어른이 되는 것 같은데 커피는 스무 살의 나에게는 아직 너무 썼다. '어른의 맛은 이렇게 쓴 것일까?' 생각하며 커피가 몸에도 별로 안 좋을 것 같고 마시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커피를 못 마셨는데 카라멜 마키아토라고 달달한 커피가 있어. 나도 그것만 마셔. 한 번 가볼래?”


그래서 나는 한 학번 선배와 함께 처음으로 스타벅스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이곳은 신세계(스타벅스랑 잘 어울리는 그런 느낌…)!


2002년은 아직 스타벅스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때였다.

강남 한복판에 있던 스타벅스의 메뉴판에는 메뉴가 너무도 많았고 뭐가 뭔지도 하나도 모르겠어서 커피를 고를 수도 없었다.

너무 메뉴판을 오래 보면 촌스러울 것 같았고, 지난번에 선배가 말해 준 가장 어렵고 긴 이름이 낯익어 조심스레 그 커피를 마시겠다고 했다. 긴 이름이 입에 붙지 않아 속으로 한 번 연습하고 말했다.

"저는 카라멜 마키아토요."


태어나 처음 마셔보는 카라멜 마키아토라니!

그 맛은 스타벅스의 세련된 인테리어보다도 더 신세계인 것이었다. 씁쓸한 커피 맛이 살짝 나면서도 바닐라 시럽과 드리즐 한 카라멜의 달콤한 맛이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카라멜 마키아토의 팬이 되었다.


언니가 말해준 바닐라 라떼를 거쳐 카페 라떼,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게 되기까지 1년이 채 안 걸렸지만 지금도 나의 최애 음료는 역시 카라멜 마키아토!


제일 좋아하는 카라멜 마키아토의 맛은 종암동 카페 부오노의 그것이다. 3년을 다녔던 애정 가득했던 학교를 그만두었을 때, 유일하게 눈물을 흘려주신 분은 학교 뒤편의 카페 부오노 사장님이었다. 나의 힐링 스폿이었던 카페 부오노에 오랜만에 가게 되었다.


사장님이 참 반가이 맞아주셨다. 조금 배가 고파서 베이글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지만...

나오면서 여기 카라멜 마키아토가 제일 맛있다며 카라멜 마키아토도 테이크아웃을 하겠다고 하니 사장님이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나를 좀 귀여워하시는 것 같다.


얼마 전에 교장 선생님이 오셔서 무슨 커피를 찾는데 엄청 고심하시더랬다.

"그... 아.. 그 커피 있는데.. 그 선생님이 맨날 마시는 달달한 커피.."

"어느 선생님이 드시는 건데요?"

내가 그만둔 지 몇 년 되었으므로 교장선생님이 내 이름을 대지는 않으셨던가보다.

"그.. 우주인쌤이 맨날 마시는 거 있는데.."

라고 하셔서 사장님이 카라멜 마키아토를 만들어주셨다고 한다.

우주인 = 아이스 카라멜 마키아토는 모두가 떠올리는 공식인 듯하다.


덩치만큼이나 마음도 커서 참 든든했던 권쌤이 마시던 콜드브루 라떼,

지금은 네덜란드에서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을 지리쌤이 마시던 애플라임에이드,

귀여운 후배 박쌤과 직언을 하지만 마음 따뜻한 언니 정쌤이 마시던 아메리카노,

방학 때 출근해 생활기록부를 열심히 적을 때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던 카푸치노,

졸업생들이 찾아와 아직 커피를 못 마신다며 시켰던 스무디와 로열 밀크티,

카라멜 마키아토와 늘 고민이 되었던 자몽에이드가 적힌 메뉴판을 보자니 학교 생활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상하게 커피는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진한 향 때문인지, 씁쓸하고 달콤한 맛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면 어른이 되는 것 같았던 때가 있었다. 4개월 하고 며칠 지나면 그 나이의 두 배가 되는 나이가 되지만 내가 어른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실수투성이이고, 아직도 꿀호떡의 꿀을 옷에 흘린다. 마흔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이라는데...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흔들려도 좋다. 지금, 카라멜 마키아토를 큰 사이즈로 시켰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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