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인우 Feb 21. 2024

꿈이었나… 슬퍼할 겨를도 없이…

소중한 꿈이를 보내며…

느닷없이 찾아온 꿈이는 갑작스레 떠났다.

원장님의 따듯하고 다정한, 그러나 정중하고 침울한 목소리가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아기가 많이 부었습니다. 아기가 많이 부어 있구요..”

다음 말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지만 또 전혀 모르겠어서 마른침을 삼키며 눈을 크게 뜬 채 원장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기가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

원장님은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제발 아니었으면 했던 그 말을 들었다. 맥이 탁 풀렸다. 내 심장도 주저앉았다. 옆에 앉은 남편이 고개를 떨구며 아주 살짝 흐느끼다가 울음을 목으로 넘겼다. 정신이 몽롱했다.


진료실을 나와 소파에 앉으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믿기지 않으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여기 있는 모든 산모들과 남편들이 다 행복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우리는 갑작스레 아기의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수술을 해야 해서 심전도 검사를 받고 짧은 상담을 했다.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잘 모르겠다. 검사 중간중간 울음이 터져 나왔다.


병원을 나서면서는 머리가 차가워졌다. 심쿵이를 생각해서 너무 슬퍼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운전을 남편에게 맡기려고 했는데 꾹꾹 울음을 눌러왔던 남편이 차 앞에서 왈칵 눈물을 쏟으며 운전을 자기가 하겠다고 해서 내가 핸들을 잡았다. 남편은 눈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며칠을 문득문득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얼마 먹지 못한 엽산과 입덧 캔디 같은 것이 너무 슬퍼 치우지도 못했다.


병원에서 축하 선물로 준 아기 양말이 너무나 작았다.

그보다도 더 작은 꿈이가 떠난 것이 종종 믿기지 않았고, 또 때로는 너무 사무치게 아팠다.


계류 유산이었기 때문에 수술을 해야 했다. 친정 엄마에게 아기를 맡기고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약 두 알을 먹고 두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수술실이 있는 층으로 내려갔다. 혈관이 보이지 않는다며 주사 바늘을 네 번이나 꽂고 팔이 퉁퉁 부었다. 결국 손등에 바늘을 꽂고 서둘러 수술실로 향했다.


드라마에 나오던 수술실 불이 저거구나… 분만실은 따듯하고 아늑하고 어두웠는데 수술실은 하얗고 차갑고 밝았다. “약 들어갑니다~”란 말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일어나라는 말을 듣고 간호사 선생님들의 부축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회복실로 향했다. 수술은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똑. 똑.

회복실에서 천천히 들어가는 수액을 보며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들을 지웠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싶었다.

남편은 계속 눈물을 훔쳤지만 난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회복해서 심쿵이를 봐야 했다.

나는, 엄마니까.


배가 고프다며 병원 옆 작은 분식집으로 향했다. 실은 집에 가면 밥을 못 먹을 것 같았다. 김밥과 라볶이를 먹는 내내 뉴스 소리만 들렸다. 하필이면 영아 살해 내용이 흘러나왔다. 빨리 먹고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엄마가 없었다.

심쿵이도 없었다.

엄마는 내가 쉬어야 한다며 아기를 데리고 친정에 가셨단다. 걸어서 40분, 내내 오르락내리락 언덕이 있는 거리를 이렇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유모차를 끌고 가셨단다.


집에는 엄마가 끓여 놓은 미역국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가 불렀지만 엄마의 정성을 생각해 한술 떴다.


이 미역국을 아기를 낳고 먹었어야 했는데…

이 미역국을 9월에 먹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사람의 소리 같지 않았다.

새끼를 잃은 어미의, 짐승 같은 울음이었다.

울음이 토해져 나왔고, 멈출 길이 없었다.


다음 날, 수술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러 갔다. 원장님 휴가로 한층 더 밝은 여자 원장님께 진료를 받았다. 초음파를 보며 너무 깨끗하다고 좋아하셨다. 수술이 정말 잘 되어서 피도 거의 안 날 거 같다고 말이다.


내가 보아도 초음파가 정말 깨끗했다. 수술이 정말 잘 되어서, 참 다행이었다. 그래서 정말 많이 울었다.

배 속에 아기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깨끗했다.


꿈이었나…

8주, 아기의 존재를 알게 된 4주라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마치 꿈이었나 싶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깨끗한 초음파를 보며 정말 꿈이었나 싶다.


아니, 꿈이였다.

꿈이 아니고, 꿈이였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 엄마 뱃속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하늘나라에 간 꿈이를 꼭 기억해 주기로 했다.


심쿵이에게도 꿈이가 하늘나라에 가서 엄마랑 아빠랑 많이 슬프다고 설명해 주었다. 14개월 아기는 내 이야기를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엄마와 아빠의 슬픔을 안다는 듯이 아빠, 그리고 엄마 순서로 토닥토닥을 해줬다.


아마도 한동안은 너무 슬플 것이다.

우리는 눈만 마주치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꿈이가 엄마, 아빠가 너무 슬픈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 같아서 이 비가 그치면 그때부터는 울지 않아야겠다.

꿈이를 잘 보내줘야겠다.


꿈이야,

사랑하는 두찌야…

평생 꿈꾸며 살라고 꿈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꿈이었나.. 싶게 잠깐 왔다가 떠나갔구나.

엄마는 심쿵이를 보느라 아마 꿈이를 오래 그리워하지 못할지도 몰라.

그렇지만 잊지는 않을 거야.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에게 와서 큰 행복을 선물한 꿈이를 잊지 못할 거야.

하늘도 너무 슬픈지 며칠 동안 비가 내리고 있어.

꿈이야, 우리가 이번에 만나지 못했지만 하늘나라에서 꼭 만나자.

그때는 엄마랑 아빠가 더 따뜻하게 꼭 안아줄게.

엄마가 많이 미안하고, 사랑해.

안녕, 내 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