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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Nov 08. 2023

파도시집선_013 빛



우리가 상대 속도로 지날 때

          


틈을 머금은 채 흘러 들어온다

벽 모퉁이 선반이 반짝 시선을 끈다

 

고정된 관객이 가끔 고개를 들어 응시할 뿐

방 안은 줄곧 인기척이 없다  

   

눈부신 새벽의 온기를 등에 업고

서서히 방 안 공기를 덥힌다   

  

그 상냥함에 마음의 빗장 풀고

머쓱한 인사 건네려는 사이

나를 비추는 시선을 거두고

금세 다른 것들로 눈길을 돌린다    


마음에 새기지 않은 것들의 면면을

소란이 비추어 주며

새삼 신기로운 장면을 선사한다     


이른 새벽의 문을 열어주고는

역逆 방향의 가장자리를 향해 조용히 소멸한다


나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해

나를 둘러싼 것들을 관통하며

너의 시속으로 바라본다


같은 시공간에 서로 다른 좌표를 찍으며

나에 대한 너의 속도와

너에 대한 나의 속도를 어림한다    


광선에 따라 연출되는 하루치의 음영陰影을 담을 뿐

우리의 좌표계는 한 번도 같은 곳을 향한 적 없다

 

정지해 있는 나를 저만치 데려가는

너의 시속으로

빛을 따라 홀연히 흘려보낸다



*파도시집선 빛에 수록된 시입니다


<책 소개>

빛은 다정합니다. 조금의 틈만 있다면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몸을 나누어 줍니다. 빛이 닿지 않는 이라면 자신의 온기라도 전합니다. 내려앉은 햇살에 반짝이는 수면, 찬란한 꽃과 나무, 차분한 달빛... 빛은 다양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피력하고 한결같은 다정함을 보여줍니다.

글자로 반사된 59가지의 빛을 『013 빛』에 담았습니다. 빛의 마음을 닮아 오늘은 어제보다 더 다정한 하루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떤가요?


https://m.yes24.com/Goods/Detail/122560052

참여 작가들의 인세는 모두 매년 기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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