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밀 Dec 20. 2023

1인분의 삶

플렉스 할때 버려야할 것들


 필요 이상의 무언가를 구매하는 일 앞에서 날로 심사숙고한다. 아마도 버리는 일에 공들이기 시작한 후 점차 자리잡힌 습관일 것이다. 한때는 나도 쇼핑에 진심이었다. 계획구매 같은 뚜렷한 동기 없이 두루 유행을 섭렵하는 일이 단순히 즐겁던 윈도쇼핑이 낙이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사들이는 가짓수가 많은 쪽은 아니어서 족족 구매로 이어지는 일은 드물었다. 나름의 유연한 발품력과 스캐닝, 광클릭 끝에 이따금 발생하는 번거로운 반품생활을 통해 아무튼 나는 급발진 쇼핑을 더욱 경계하는 자로 거듭났다. 샀는데도 공허한 것보다는 사지 않아서(없어서) 불편한 쪽이 어쩐지 마음두기 편했다.


 그런 내게도, 없으면 불편해서 A부터 Z까지 구비해야 직성이 풀리는 배우자가 있으니 그는 재야의 맥시멀리스트로도 손색없는 존재감의 쇼핑 장인이다. 내향인답게 사부작대며 끊임없이 사들이는 도장깨기 같은 장관을 목격할 때마다 아득해지는데 또 웬만한 회유책으로는 꿈쩍하지 않아 종종 서글퍼지고 마는 나는 버리고 비우는 일로 이따금 그 노여움을 달래고는 한다.




 밥을 먹다 무심코 '음료' 얘기로 물꼬가 튼다고 하자.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현관문 앞에 캔음료, 팩우유, 주류 등 각종 액상류가 척척 쌓인다. 화두가 되는 대부분의 것을 일단 취하고 보는 뜻밖의 큰손이었다. 새벽이 오면 이제 나는 자동반사적으로 새벽 배송의 발자취부터 쫓는다.

 템플스테이에 보내고 싶은 대상이 어디 꼭 4세 아이뿐이겠는가. 무소유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주방 한 편에 물멍을 위해 공들이는 꾸꾸(꾸민듯 꾸민) 어항은 요즘 급부상하는 플렉스 대상인데 네온사인 보다 화려해서 생물체에 무심한 나도 가끔 넋놓고 볼 때가 있다.

형형색색 물고기를 정기적으로 데려올 때면, 그가 되고 싶은 것은 혹시 형광 비늘로 매일 환복하는 금빛 물고기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에 네온 수영복 한 벌로 태초의 환희를 안겨주고 싶은 심경이다.


 가정 내 거의 모든 재화와 식자재 구매에 진심인 그에게 냉장고 아래칸 사각지대에 잊혀져 부름을 기다리는 식재료 구원이 먼저임을 잊지말라 당부하고, 레고 더미에서 또 다른 레고를 부르짖는 아이에게 설명서에 구애받지 않고 뭐든 조합해 신레고를 창출하는 게 찐 레고의 기쁨 아니겠냐고 설파해 본다.


 각자의 생활 노선을 고수하려면 각개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건강한 가정생활을 위해 때론 눈감아주고 덜어내더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본질은 쉽게 협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지속가능한 가계 경제에 보탬이 되는 쪽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새것이나 그저 처음 보는 것, 시선을 현혹하는 표면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쉽게 마음을 뺏기지 않고, 지난 것을 들추고 또 다른 쓰임을 발견하는 일에 남은 삶을 공들이고 싶다. 나도 좋고 지구도 좋은 일 앞에서 우리는 조금씩 가뿐해질 테니까.



사진: Pixabay

작가의 이전글 파도시집선_013 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