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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밀 Dec 22. 2023

파도시집선_014 새벽


안과 밖



바깥은 고요하고 안은 분주하다

머리맡에 둔 물잔의 안부를 살피려

이른 알람을 맞추어 둔다


온전히 깨어있을 때

고스란히 감지되는 흔들림 대신

암전된 고요를 느낄 수 있게


한낮의 고뇌와 시름이 담긴 물잔을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절박하게 두었다


윤기 없이 얼룩진 표면을

내 것이지만 내 것 아닌 마음으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잔잔한 미동만을 유지한 채

기울어지거나 넘치지 않는

뻔한 안도감이 흐른다


분주한 기억을 손끝에 툭 떨구어

짧은 파동을 일으켜 보고

이내 잠잠해지기를 기다린다


저문 낙엽 사이로 끝내 소멸한 발자국은

까맣게 잊은 것들로부터 달아나

또 다른 망각을 딛겠지


아직 어스름한 바깥 공기를

흘깃 바라본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시간

홀로이 깨어

물잔에 남은 마음을 꼴깍 비웠다


바깥은 분주하고 안은 고요하다



*파도시집선 새벽에 수록된 시입니다



<책 소개>

고요한 새벽에는 소리 없는 활자들이 가장 시끄러워지곤 합니다. 끝없는 걱정, 불안, 후회들이 나의 머릿속을 채우고, 마침표 없는 생각들은 새벽을 무한히 늘려 나를 가라앉게 만듭니다. 창문엔 검정을 지나 탁한 푸른색이 깔리고 곧 가로등이 꺼진다는 건 아침이 온다는 소리. 다시 살아가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언젠가 다정해질 저마다의 새벽을 위해 56개의 시를 <014 새벽>에 담았습니다.


https://m.yes24.com/Goods/Detail/124183962

참여 작가들의 인세는 모두 매년 기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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