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처럼 살아가기 4]

속초 대포항, 든든한 등대에 등 기대기

by 에스더esther

2.5단계의 답답함이다. 코로나 블루로 우울이 밑 모를 바닥까지 허우적 거린다. 살아야 한다. 생존해야 하므로 등 기댈 곳을 찾아 나선다. 속초 바다를 지키는 대포항의 등대다. 엉 엉, 울어도 다 받아줄 것 같은 든든한 등에 확 기대어 버린다.


속초 힐링로드, 외옹치 건너 대포항 등대


“외옹치 바다에서 기암괴석과 푸른 바다의 다정한 대화를 엿듣다”


강원도 고성을 지나 속초에 다다를 때 쯤이면 동해의 풍경이 바뀐다. 세련된 도시풍으로 변모한다고나 할까. 다만, 중간에 푸른 바다의 다정한 풍경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속초 힐링로드를 만날 수 있다. 고성에서 속초 대포항으로 이어지는 참한 중매쟁이 같은 외옹치 바다가 바로 그곳이다. 외옹치 해변.


외옹치 해변 산책길 풍경

외옹치 마을을 중심으로 조성된 해변은 ‘바다향기로‘ 산책길로 이어진다. 기암괴석과 푸른 바다의 알콩달콩한 대화가 어우러진 명품 길. 곳곳에 전망대와 벤치 등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해안경계용 철책도 일부는 철거되지 않고 남겨져 있다. 철책을 바라 보면서 이 지역이 결코 아무나 드나들 수 없었던 금단의 해변이었음을 실감한다.


등대의 위로


“대포항 전망대에 올라 바라 본 등대들의 행진”


자동차 네비게이션에 대포항 전망대를 목적지로 입력하고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드디어 원하는 종착지에 도착했다는 표시가 뜬다. 그런데 사방을 둘러 보아도 간절하게 찾아 나선 대포항 전망대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오랜 세월 겪어 낸 한적한 동네 한가운데 차를 멈춘 채 당황하고 있을 뿐이다. 겨우겨우 마을 어귀에 차를 세워두고 둔덕 나무에 내어 걸린 표지판을 보니 쭉 뻗은 언덕배기를 거쳐 한참을 산을 타고 올라가야 비로소 전망대가 나올 모양이다. 괜찮다, 아주 정겨운 시골 산길이므로 친구처럼 피어있는 들꽃, 산새들과 얘기하면서 걷기에 딱 좋은 길이다.


겉옷의 소매를 허리춤에 벨트처럼 묶고 씩씩하게 낯선 곳에서의 오르막을 시작한다. 이 나무, 저 나무들과 수다를 떨다가 이마를 거쳐 두 볼 타고 살짝 땀이 흐를 때쯤 두둥 하고 눈앞에 ‘대포항 전망대’가 나타난다. 초록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나무 데크로 꾸며져 있는 아지트 같은 곳이다.


지금 이 순간,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홀로 차지한 대포항 전망대. 이곳에서 바라다보이는 아득히 먼 바다, 선물처럼 다가서는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저 멀리 행진하듯이 나란히 선 하얗고 붉은 등대들. 온통 가슴 설레는 숨 막히는 절정. 아련히 손 뻗으면 닿을 것처럼 시나브로 길손을 끌어당기는 치명적인 유혹이다.

등대에 등기대도 좋아
순백의 방파제 등대


“한 걸음에 달려가 든든한 대포항 등대에 등 기대다”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기에는 바다가 끌어당기는 유혹을 참아낼 재간이 없었다. 온몸으로 직접 등대의 이쪽저쪽을 보듬어 주고 싶은 열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걸음에 달려간 대포항. 하염없이 사랑스러운 붉은 연정의 등대 곁에서 다정한 연인이 주고받는 은밀한 속삭임들이 햇살 속으로 푸르게 퍼진다. 너그러운 품을 주고도 모자란 듯, 대포항 등대는 한없이 정다운 모습이었다.


어느덧 방파제를 껴안은 바다 위로 그림처럼 다정한 반영이 일렁인다. 한낮의 태양까지도 잠시 숨을 멈추는 완전한 힐링의 순간.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대포항 방파제 길의 곡선과 직선들 마저도 일상에 지쳐 기진맥진한 나그네를 맘껏 위로하기에 여념이 없다.


힐링등대의 위로


“일몰의 순간에도 단정한 대포항 등대”


어김없이 하루의 맥박이 오후의 속도로 기울고 있다. 대포항 방파제 너머로 일몰의 순간이 찾아온다. 이제 아쉬운 작별이 필요한 걸까. 돌아서기 싫은 마음을 눈치 챈 것처럼 붉고 흰 등대의 매무새가 단정하다. 마치 고운 마음 차분히 접어 노을 속에 잠시 감추어 두었다가 다음에 다시 만날 때 꺼내기를 약속하자는 듯이.


그래야겠지,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위로가 필요한 고단한 상처들. 정성껏 보듬어 안아주고 싶다. 손바닥을 가리는 쪽빛 보자기 만큼의 작은 위로일지언정 필요한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건네줄 다소곳한 품이 되어야 하겠지. 대포항 등대를 배경으로 어스름하게 물들어 가는 해 저무는 바다. 석양의 아늑함이 고스란히 치유의 에너지로 다가온다.


가슴 한 켠에 대포항 등대가 건네준 나눔의 메시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돌아선다. 조금은 성숙해지고 제법은 의젓해졌을지도 모를 발걸음을 씩씩하게 내어 딛는다.


석양을 맞이하는 대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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