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처럼 살아가기 5]

양양 후진항 등대, 사람을 품고 사랑을 하다

by 에스더esther

양양 힐링로드, 간절한 염원을 품다!!!


“사람을 품고 사랑을 하다”


누군가 나에게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을 품고 싶어서’라고 대답하고 싶다. 양양은 그런 곳이다. 사람을 품고 사랑을 나누어 주는 곳. 환경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양양은 전국에서 미세먼지가 제일 적고, 아울러 공기가 매우 맑은 곳 중 하나’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 찬사들이 어울리는 청정지역에서조차 희고, 검은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느끼며 찾아간 양양. 우선 물치항구를 찾았다. 코로나가 주는 일상의 상실감이 너무 커 제대로 서 있지도, 앉아 있지도 못할 지경에서 만난 물치항 등대는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마치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다정함으로 우울했던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물치항의 등대는 연애하는 커플처럼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이 결 고운 물치해변을 온통 달달하게 만든다. 오죽하면 아예 그들의 연애를 지켜보느라 앙증맞은 초승달 모양의 관중석까지 마련이 되어 있을까. 오래도록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물치는 속초의 설악산 입구 쪽에 근접하여 있으면서, 양양의 북부권을 대표하는 해양관광지이기도 하다. 가깝고도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는 일상에 지친 여행자들을 위한 멋진 해양공원을 품고 있다. 해양공원에는 아기자기한 쉼터들이 동해의 힐링을 선물해 줄 뿐만 아니라, 인근에 있는 물치항 회센타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동선을 배려하기도 한다. ‘물치는 항구다’라는 슬로건으로 더욱 더 재치있는 외관을 뽐내는 물치항의 먹거리 대표주자, 활어센타로 이어지는 길이다. 아울러 물치의 특산물이 송이버섯이라고 하니, 커플로 마주보고 있는 희고 붉은 등대가 송이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는 사연이 무릇 짐작이 간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는 서로가 금방이라도 껴안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서 있는 듯한 달달한 커플등대. 그러나 실제로 하얀등대와 빨간등대는 각기 다른 방파제 끝에 서 있다. 서로를 품에 안을 수는 없지만 바다를 오가는 이들에게 기꺼이 친절한 방향이 되어 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등대의 운명. 그래서 등대커플의 사랑이 더욱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후진항, 해수관음상의 등에 기대다”


후진항으로 걸음을 옮기니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가 제법 방파제 둑길까지 기세를 떨친다. 트라이포드로 축대 삼은 방파제 기둥이 파랑으로 이어지는 길 끝, 파도치는 바다의 경계쯤에 듬직한 등대가 서 있다. 그리고 저 멀리 배경으로 보이는 낙산사의 해수관음상. 아련히 보이는 높이가 자못 간절한 소망으로 다가온다. 양양 후진항은 최근 활발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해변의 플리마켓으로도 유명하다. 양평의 문호리 주말장터를 벤치마킹한 성공사례이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양양이 자랑하는 어촌마을의 명품행사인 것이다.


양양군의 서핑명소인 낙산해변은 후진항, 광진항 등과 함께 다양한 자연적 특색을 바탕으로 하는 고유자원을 자랑하고 있다. 이러한 천혜의 자원을 바탕으로 양양군은 서핑과 지역축제 및 양양의 전통시장과의 연결고리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 활력 넘치는 아름다운 청사진이다. 동해안의 대표적인 청정지역이면서 서핑의 최적 요충지임을 자랑하고 있는 후진항에는 곧 바다전망대와 해변공원도 조성될 예정이라고 한다. 낙산사 해수관음상에 등 기대고 있는 후진항 등대의 염원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고단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언제라도 찾아와 힐링을 선물 받을 수 있는 참한 방향, 올곧은 지표가 되어 주고 싶다는 소망 말이다.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의 비밀”


낙산사는 신라 문무왕 때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고찰이다. 관동팔경 중 한 곳인 만큼 해안절벽 앞 시원하게 트인 동해가 눈이 부시다. 해안길 따라 조금만 더 걸어 올라가면 해풍으로 단련된 소나무 두 그루가 병사처럼 보초를 서는 의상대를 만날 수 있다. 거친 바람도 때로는 쉼을 얻는 곳이다. 비교적 길이 험하지 않고 아담한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의상대를 찾은 인파를 살펴보면 유독 2대, 3대를 아우르는 가족들이 많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들과 손자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정답게 어울리는 정자에는 맑은 정서적 교감이 가득하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유쾌한 대화로 식힌 후에 오른쪽으로 향하면 홍련암이고, 왼쪽으로 가면 보태전과 해수관음상이 나오는 길이다. 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이던 사람들이 각자의 취향대로 방향을 잡는다. 처음 낙산사를 찾아왔을 때 해수관음상을 먼저 보러 가느라 힘이 다 빠져 홍련암을 들리지 못한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홍련암 쪽으로 먼저 발길을 옮겼다.


홍련암으로 가는 길에 문득 곁을 돌아보니, 암초 위에 우뚝 선 낙산항 방파제 등대가 보인다. 역광을 받아 신비스럽게 보이는 의상대를 마치 보호하기라도 하듯, 고즈넉하게 서 있는 등대의 아우라가 무한한 감동으로 빛난다. 문득, 눈물이 나는 건 왜일까. 사람들이 모두 다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의상대만을 바라볼 때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선 우직한 등대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내면의 감탄사가 기어코 눈물로 변신한 모양이다. 거친 파도마저 고스란히 끌어안는 낙산항 등대의 너그러움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거센 파도가 쉬지 않고 들락거리는 아슴한 절벽에 드디어 홍련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가가기 힘든 곳에 새초롬하게 들어선 홍련암의 전설은 이렇다. ‘낙산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어느 날, 파랑새를 따라 석굴로 들어 셨는데 새가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것을 기이하게 여긴 의상이 석굴에 앉아 칠일 밤낮을 끊임없이 기도하자 이윽고 바다 가운데에서 연꽃이 피어 올랐고, 연꽃 안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순간 의상이 마음에 품었던 것을 기도로 풀어내자 신기하게도 만사형통 되었다고 한다. (출처:한국관광공사)’ 그런 전설 때문인지 낙산사 절벽의 홍련암은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어르신이든 아이든 가지런히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정성이 홍련암을 가득 채우고, 기도의 품새는 파랑새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올라 바다를 거슬러 하늘 끝에 닿고 있다.



“해수관음상, 간절한 염원을 품다”


이제 드디어 낙산사의 상징인 해수관음상을 찾아 반대편 길로 나선다. 낙산사는 2005년 큰 산불로 인해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07년에 이루어진 복원과정에서 형태가 바뀐 전각들도 있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보타전을 지나 드디어 해수관음상을 마주한다. 사찰의 끝자락에 위치한 거대한 관음불상, 높이도 높이려니와 자애로운 형상만으로도 경외심이 일어난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가슴이 낮아진다. 때마침 누군가 운동화를 벗고, 관음상 앞 기도전으로 나아가 손을 모은다. 뒷모습조차 겸손하다. 양양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는 낙산사의 해수관음상. 그가 품는 간절한 염원이 참 지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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