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처럼 살아가기 6]

주문진 등대, 도깨비와 사랑에 빠지다

by 에스더esther


“주문진 등대의 넉넉한 시선”


주문진처럼 사랑하고 싶다. 낭만적인 도깨비가 되어 주문진 방파제를 마구 휘돌아 다녀도 좋을 것 같다. 넉넉한 시선으로 동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봐 주는 주문진 등대의 품에 안겨 이대로 잠이 들어도 행복하겠다. 꿈을 꾸면 마치 도깨비 신부가 되어있지 않을까 싶은 그런 기분, 바다는 여전히 안녕하다. 주문진 등대는 강원도 최초의 등대로도 알려져 있다. 태백산맥에서부터 뻗어 나온 산줄기가 동해로 내려와 바다와 만나는 언덕쯤에 아담한 높이로 서 있다. 강릉시에 속하는 단 하나뿐인 읍으로서의 주문진은 예전에 물품을 주문받아 나르던 나루터가 있었기 때문에 부르게 된 지명이라고 전한다.


강원도 연안은 인천항이나 부산항 등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항구가 늦게 발달했다. 그래서인지 항로표지인 등대의 설치도 그만큼 늦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 인천 팔미도 등대가 1903년 6월에 점등되었던 것에 비하여, 주문진 등대는 1918년 3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강원도 최초로 항로표지의 역할을 시작하였으니 어떻게 보면 등대의 지각생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주문진 등대가 위치한 주문진읍 주문진리는 원래 강릉군 신리면 지역이었으며, 1916년경 부산과 원산을 아우르는 항로의 중간 기항지가 되면서부터 주문리로 지명이 바뀌고, 주문진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주문진의 바다는 풍부한 어류자원을 자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취 빛 푸르름으로 빛나는 해안 풍경 또한 으뜸이다. 특히, 바다 전망대를 포함한 해양문화 공원까지 품고 있는 주문진 등대는 누구라도 평안하게 쉼을 얻을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다.



“영진해변 방파제, 도깨비가 되어도 좋아”


힐링의 숨결 가득한 바다향기에 취한 채 주문진 등대와 가까운 영진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황홀하게 만들었던 tvn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장소로도 유명한 곳, 도깨비 방파제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드라마는 진즉에 끝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영진해변 방파제 위에는 도깨비가 되어도 좋을 사람들이 잔뜩 드나드는 중이다. 정답게 서로 짝꿍 하며 서 있는 빨갛고 하얀 등대 사이로 매일같이 모여드는 사랑꾼들이 언제나 방파제의 처음과 끝을 차지하고 있다. 인파는 온종일 물밀 듯이 밀려와도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운 인연들이 모여 서로를 배려하는 단정한 질서를 만들기 때문이다.


착한 아이들처럼 차근차근 순서를 지키는 사람들. 저마다 각자의 드라마로 도깨비 사랑의 주인공이 된다. 영원히 기억될 고유의 인증샷을 남기는 사이, 아슬아슬하고 멋진 포즈들이 방파제 길 따라 무수한 사랑의 감탄사들을 터트린다. 바다도 신이 나서 덩달아 도깨비 마법을 부린다. 세월의 무게마저 뛰어넘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마법처럼 푸른 물결 속에 숨겨주는 것이다. 미주알고주알 차고 넘치는 깨알 같은 수다가 바다 건너 하늘에 닿아 온통 수평선을 간지럼 태우고 있는걸 보면 조금은 바다의 마법을 눈치챌 수도 있을 듯하다. 주문진에서만큼은 바다의 간지러운 마법에 빠져 마음껏 사랑을 누려도 좋다. 내친김에, 반짝이는 윤슬 사이로 도깨비 주문을 외워 본다. ‘주문진에서는 누구라도 사랑에 빠진 도깨비가 되어도 좋다’라고.



“소돌항, 일억 오천만년전 지상으로 솟은 바위들”


소돌항은 주문진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주문진 해변과 접하여 있다. 마을 전체가 마치 소가 누워있는 것 같은 모양이라 하여 소돌(牛岩)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소돌해변 주변은 기묘한 형상들의 바위가 곳곳에 돌출되어 있어 신비로운 기운마저 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모양의 ‘아들바위’가 있는데, 무려 일억 오천만년전 쥐라기 시대에 바닷속에 있다가 지각변동으로 인하여 지상으로 솟은 바위라고 한다. 이 바위에 어린 전설도 있다. 아주 먼 옛날, 전쟁통에 아들을 잃은 노부부가 이곳 아들바위에 와서 백일기도를 하여 다시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그 이후 자식이 없는 부부들이 간절히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소원바위 혹은 소바위라고도 부르는 아들바위와 함께 여러 가지 형상의 기암괴석과 조형물들이 바람과 파도에 깍인 절묘한 모습으로 아들바위 공원을 채우고 있다.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때문인지 타지에서 오는 관광객들 중에서도 유난히 신혼부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소돌항의 가장 높은 곳에서 듬직한 모습으로 서 있는 해안초소마저 많은 이들의 소원을 품고 헤아려 주는 듯 등대처럼 의젓해 보인다. 아울러, 소돌을 더욱 빛나게 하는 체험이 있다.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바다호수에서 투명카누를 타는 것이다. 자연이 만든 조각품들이 자청해서 병풍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는 곳, 마치 지중해 어디쯤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투명한 바다가 카누와 일체가 된다. 힐링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이다.



“주문진 수산시장, 새벽을 깨우다”


주문진 수산시장의 새벽은 활기차다. 항구에 들어오는 고깃배에는 문어, 오징어, 골뱅이, 홍게, 복어 등 종류도 다양한 물고기들이 가득하다. 경매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경매사들 주위로 인파가 모이면서 긴박한 상황들이 전개된다. 현장에서는 수신호로 가격을 흥정하고 경매표가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순식간에 경매가 이루어진다. 대왕문어가 낙찰되는 순간은 흡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드라마틱하다. 새로운 주인을 만나 떠나는 문어는 여전히 힘이 세고 엄청나게 저돌적이다. 수산시장 좌판을 압도해 버린다.


주문진항 근처에 있는 어민시장에서는 경매가 아니더라도 소소하게 활어를 살 수도 있다. 싱싱한 상태 그대로 손질해 주는 곳도 있어 전문가의 솜씨가 어우러진 두툼한 회와 멋지게 회 뜨는 솜씨까지도 감상할 수 있는건 덤이다. 풍성한 먹거리로 넘쳐나는 주문진은 오징어의 천국이다. 특히, 올해는 오징어가 풍년이라 어민들의 표정도 밝다. 건조도 아니고, 냉동도 아닌 살아 있는 오징어로 만드는 각종 회와 요리는 미식가들의 입맛을 만족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여행을 마치고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여행객들에게 주문진항 인근의 건어물 시장은 보석같은 곳이다. 산해진미 가득한 주문진을 기억하기 위해 넉넉한 인심으로 장을 보고 돌아서는 마음이 흐믓해 진다. 코로나로 인해 답답해진 일상이 치유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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