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연극을 보고 같은 이야기겠거니 미뤄두던 소설을 이제야 다 읽었다. 이 책은 1974년 8월에서 1975년 3월까지의 유신시절을 시대적 배경으로한, 진영이라는 한 소년의 성장소설이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연극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인물들의 섬세한 내면묘사는 연극이 무대에서 보여준 것들을 훌쩍 앞선다. 평안도 실향민의 4남매 중 둘째로, 몸져 누우신 아버지, 살아남기 위해 각자 고군분투하는 가족들, 그럼에도 서서히 몰락해가는 가정을 지켜보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소년 진영의 밀도있는 이야기는 읽는 내내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달한다. 비슷한 시대를 통과해온 독자들이라면 은근히 미소지을 만한, 채변검사, 만화방, 회수권, 연탄갈이, 트랜지스터 라디오, 만원버스 등에 대한 에피소드들와 더불어 당시 서교동, 화곡동, 광화문, 신촌 일대의 풍경들이 손에 잡힐 듯 재현되고, 당대의 음악과 가수들이 배경에 촘촘히 자리잡고 있는데 소설을 둘러싸고 있는 정서는 어쩐지 외롭고, 쓸쓸하고 그립고 아련하다. 그 모든 폭력의 시대를 지나 우리 모두는 어떻게 어른이 되었을까?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