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짐

한 번도 제대로 배불러 본 적 없는 남자

by 잔잔한고요

누군가는 내게 꼿꼿하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아이처럼 엉뚱하다고 말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내 서늘한 무심함이 매력적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내 안에는 단 한 번도 채워지지 않은, 태초부터 시작된 지독한 허기가 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배가 고팠고,
배고프다.


이제 20대의 끝자락에 접어드는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굶주려 왔다. 불편한 몸으로 세상을 버텨내기 위해 나는 주먹을 꽉 쥐는 법부터 배웠다. "기다려라, 열심히 살아라, 단단해져라." 세상의 요구에 맞춰 나를 깎아내며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재택근무의 폐쇄된 방 안에서 끝이 없는 무한대의 숫자를 헤아렸지만, 정작 내 영혼은 단 한 조각의 온기조차 씹어보지 못했다.


​최근 나는 아주 낯선 환상을 하나 품었다. 이름 모를 그녀, 이제부터 그녀를 지수라고 하겠다.
그녀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눈부시게 아름답지도, 마냥 자애롭지도 않다. 보편적인 여성상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그녀는 내 꽉 쥔 주먹을 보며 능글맞게 웃으며 말한다. "현재 씨, 배고프죠? 이럴 땐 망설이지 말고 배고파.. 하는 거예요. 저기 가서 우리 밥 먹을래요?"


그녀의 목소리를 귀에 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녀 앞에서 얼음나라의 왕자처럼 굴고 싶었다. 절대로 울지 않겠다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겠다고 시나리오를 수백 번 고쳐 썼다. 하지만 그녀가 내 손가락 마디마디를 간지럽히며 손장난을 걸어올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원초적인 욕망-누군가에게 갓난아기처럼 폭 안겨 "배고파, 나 좀 살려줘"라고 울먹이고 싶은- 그거야말로 나의 가장 진실한 얼굴이라는 걸.


​이제 나는 이 지독한 배고픔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캐러멜 한 알로 버티는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나의 허기는 더 날카로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 날카로움이 결국 나를 한 번 더 살게 할 것이다. 진짜 여자를 만나고 싶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기분 좋은 따뜻함이 감도는 살결, 그리고 그런 그녀가 차려주는 시금치나물과 무생채, 부드러운 두부, 그리고 소고기 뭇국이 차려진 정갈한 밥상을 받고 싶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당신, 왜 이제 왔어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