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야만 하는 이유
나의 왼쪽 몸은 나에게 늘 낯선 이방인이다. 태어나면서부터 20대 후반인 지금까지, 뇌성마비라는 이름의 굴레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틈만 나면 그분께 물었다. "주님, 도대체 나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 겁니까? 왜 나의 길은 단 한 발자국도 쉬운 법이 없습니까?"
남들이 한 번에 깨우치는 지식을 나는 수십 번을 되씹어야 겨우 내 것으로 만든다. 돌아서면 흩어지는 기억의 조각들을 붙잡기 위해 나는 남들보다 몇 배나 더 지독하게 나를 몰아붙였다. 영성과 일상 사이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이 '불편함'이 혹시 신의 실수가 아니었을까 원망하며 울었다. 사랑조차 나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평범한 온기 한 조각을 얻기 위해 나는 온 영혼을 다해 허기를 견뎌야 했다.
하지만 요즘,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어쩌면 주님은 나에게 '가장 순수한 허기'를 주심으로써, 세상이 잊고 사는 '갈망의 가치'를 일깨우려 하신 게 아닐까. 수십 번 반복해야만 얻어지는 배움처럼, 사랑 또한 수천 번의 기다림과 수만 번의 갈증 끝에 마주했을 때 비로소 '진짜'가 된다는 것을 내 삶으로 기록하게 하시는 건 아닐까.
나의 불편한 왼쪽 몸은 내가 교만해지지 않게 만드는 가장 낮은 자리의 가시이며, 내가 내뱉는 "배고프다"는 신음은 신을 향한 가장 정직한 기도다.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게 하나도 없는 인생이기에, 나는 작은 초코칩 한 조각에서도 신의 은총을 발견하고, 이름 모를 또래 여성의 환영을 통해서도 능동적인 구원을 꿈꾼다.
주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속도가 아니라 밀도로 생의 온 부분을 사랑하라. 쉽게 얻은 배부름보다, 지독하게 굶주린 끝에 마주한 밥상이 얼마나 거룩한지를 너의 삶으로 증명해보라."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온몸을 비틀며 거부하고 싶은 차갑고도 아픈 진실을 말이다.
나는 이제 이 쉽지 않은 사랑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 보려 한다. 비록 내일 아침 다시 멍하게 누워 기도할 힘조차 없을지라도, 어느새 아이처럼 달래지며 꼭 쥐어 하얘진 손가락이 하나씩 조심스럽게 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