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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gette J Oct 03. 2022

비교하다

한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일요일의 마지막 밤 어떤 날은 즐겁고 어떤 날은 아쉽기만 하다 오늘은 돌아오는 월요일이 아쉬운 밤이었다 하지만 글쓰기모임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들으며 생기를 되찾는다 설거지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온몸의 공감의 세포들이 쭈뼛 일어섰다 고슴도치의 바늘이 내 손가락을 찌르는 듯한 느낌으로 전달되어 내 마음속에 소화되었다 모임이 끝난 후 의자에 앉아 멍하니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다른 분의 변화되고 있다는 자신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덕분에 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기 시작한다 보이는 것에 치중하며 앞만 보며 달려왔던 나는 수직적인 계급사회에서 넓은 연령대의 다양한 사람들과 일한다 명령에 움직이며 어쩔 수 없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지만 도레미파솔라시도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계이름처럼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하모니를 이루는 데는 늘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들과 10년을 뒹굴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기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착각이 세상은 넓고 나는 지구상에 보이지 않는 작은 먼지보다 작은 존재임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말풍선들이 당장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 맑은 하늘과 인사를 한다 제일 끝에 있는 하나의 이야기가 나의 마음에 가슴 깊이 박혔다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IMF로 영혼까지 폭삭 망해 버렸다 그리고 근근이 2년을 버티다 3학년이 될 무렵 주공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어릴 때는 어디에 사는지가 사회적 계층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처음 해보는 전학이라 낯설었지만 곧 친구들과 친해졌고, 한 친구의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XXX 친구 XXX입니다”

“어서 와 잘 왔어 전학 온 친구가 너구나 재밌게 잘 놀다가”

“참 어디 사니?”

“xxx 아파트 살아요”

“아.. (당황하며) 그래? 어쩌지? 아줌마가 xx랑 가야 할 곳이 있었는데 잊고 있었네

다음에 와서 놀아야겠다.”

“네 알겠습니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어서 나가라는 눈빛에 나는 밤에 야반도주를 하는 죄수가 된 것 같았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체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그리고 듣지 말았어야 할 이야기가 어렴풋이 내 귓가에 또렷하게 들린다

“너! 엄마가 저기 아파트 사는 아이랑 놀지 말랬지?”

아직도 눈을 감고 생각해 보면 그 아주머니의 표정과 목소리가 영화관에서 큰 화면으로 상영되는 것처럼 생생하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기억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전학을 와서 새로 사귄 친구 집에 놀러 간 것뿐이었다. 나는 뒤처지거나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다. 우리 집이 망해서 주공 아파트로 보금자리를 바꾼 것만으로도 비교를 당했고 합당한 이유 없이 나의 존재가 무시되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아픔은 다른 따뜻한 친구가 찾아와 잊히는 듯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게임을 하며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딩동 딩동” 처음 보는 사람이 우리 집 벨을 누르며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자마자 내 친구의 등을 때리며 나를 밀치며 급히 데리고 나갔다.

“여기사는 애랑 놀지도 말고 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랬지? 엄마 말 무시하는 거야!?”

상처가 아무는 듯했으나 가난하다는 이유로 면전에서 대 놓고 차별을 받아야 했다

그 뒤로 쓸쓸함이 치유되지 못한 채 3년 동안 그곳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가방고리에 많은 비교와 선입견의 꼬리표를 달고 다닌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동네가 할렘가도 아니고 똑같은 주공 아파트에 단지 동수만 다를 뿐인데 그렇게까지 심하게 했었어야 했나?라는 의문이 든다 사는 곳으로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는 걸까?

IMF 이후 빈부격차의 최 하층에서 존재가치의 차별을 받았던 상처는 스스로가 누군가에 의해 비교 당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게 했다 덕분에 나는 외적으로 보이는 것에 민감해졌고 가난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 사생활을 감추고 옷과 청결에 신경을 많이 쓰며 살았다 그리고 꼼꼼한 업무처리 능력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되어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 생생한 차별의 경험은“비교”라는 단어의 정의를 왜곡시키며 내 안에 고통스러운 상처로 박혀있다 오늘은 이 아픈 기억이 담긴 오류의 칩을 빼내고 경제적 조건이 아닌 개개인의 고유성을 수용하는 세상을 만나고 싶다 함께 배우고 느끼며 성장하는 사람들을 통해 어린 시절의 나를 보듬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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