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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gette J Sep 25. 2022

보고싶다

창문을 쾅쾅 두드리는 거친 비바람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마음을 진정하고 나니 잠이 달아나고 오묘한 감정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갑자기 기록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더듬더듬 팔을 휘젓자 손에 스마트폰이 잡힌다. 어둠을 뚫고 나오는 눈부신 스마트폰의 불빛에 의지하여 조심스레 순간의 생각들을 붙잡는다

어렸을 적 나는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다져진 헌신의 계단을 오르며 성인이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오르기만 했던 어린아이는 어느새 아빠가 되고 집안의 기둥이 되어 또 다른 희생의 계단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묵묵하게 계단을 처절하게 만들어 오던 어느 날 코로나 19가 세계 곳곳에 퍼진다는 뉴스가 세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바쁜 나에게는 남 일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이병이 우리 가족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기 시작했다 피부로 전해지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커져 어느새 우리 가족만 세상에 남겨져 격리된 채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빨리 이 생활이 끝나기만을 기도하고 있었다.


2020년 5월 22일 새벽에 걸려온 낯선 번호의 전화. 

병원에 계신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병원으로 찾아갔다. 생전 느껴보지 못한 어머니의 차갑고 굳어진 두 손을 굳게 잡고 어안이 벙벙해 질 무렵 병원에서는 나에게 무언가를

조심스러운 척 계속해서 안내했다 예고 없이 떠나간 나의 어머니를 충분히 보지도 못한 채 차마 아들의 마지막을 보지 못해 감지 못하신 두 눈을 감겨드리고 다음 절차를 밟아야만 했다 그 시각 같은 공간 다른 병실에 반년 사이 많이 쇠약해져 기억마저 잃으신 아버지는 이런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허공에 소리만 지르고 계셨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혼자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했던 나는 오늘도 아내의 두 손을 꼭 잡고 어려운 3일을 보내야 했다



2020년 11월 20일 지난 5월과 비슷한 시간에 걸려온 새벽의 전화. 갑자기 생긴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어머니를 너무 사랑했던 아버지가 또다시 갑자기 하늘로 떠나갔다. 조건 없는 사랑을 바탕으로 없는 형편에도 아들 하나 바라보며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시며 열심히 살아오신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그렇게 허망하게 내 곁을 떠나 하늘에서 재회하셨다. 이제 나는 정말 혼자였다.



2021년 9월 22일 추석의 마지막 날 윤서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 불안감이 급습하여 빠르게 윤서를 안고 응급실로 향하고 보호자가 한 명만 있을 수 있어 정신없이 두 모녀와 문 하나를 두고 헤어졌다 며칠 입원하면 될 줄 알았지만 윤서는 40일 동안 중환자실에서 엄마 아빠 품을 떠나 고군분투하며 알 수 없는 병들과 싸웠다. 입원 50일 무렵 집에는 올 수 있었지만, 산소호흡기와 기계를 몸 안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우리 세 가족 다시 재회할 수 있음에 행복했고 마지막 남은 혈육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했다



2022년 4월 25일 윤서 생일 D-4 우리 딸이 하루를 살아도 더욱더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9번째 생일을 더욱더 성대하고 하하 호호 웃으며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 선택했던 3일 일정의 병원 입원 치료계획 오후가 돼서 입원 절차를 마치고 병원복으로 갈아입었다. 같이 핸드폰을 보며 선생님이 산소 기계를 바꿔주시면 편의점 쇼핑하러 가자고 윤서와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하지만 잠시 뒤 갑자기 온몸에 발작과 함께 숨을 헐떡거리고 정신을 잃더니 1시간 동안 많은 의사 선생님들의 땀과 노력을 외면한 채 내 심장 조윤서는 정말 그렇게 갑자기 하늘의 별이 되었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문득 드는 생각이 나를 어이없이 웃음 짓게 만든다. 이게 정말 한 사람의 개인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윤서까지 어느 하나 마음을 정리하고 떠나보내지 못했는데 눈을 뜨면 앞에 보이는 아직 치우지 못한 윤서의 사진을 보고 갑작스러운 이별의 순간이 떠오르면 또 갑자기 떠나가신 두 부모님이 겹쳐지고 화장실을 가든 출근을 하든 창밖에 보이는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은 나무조차도 하하 호호 웃으며 차 안에서 달리던 우리 가족의 추억이 생생하기만 해서 아직도 이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래도 슬픔을 누른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하루를 어떻게 버티다 지금까지 왔다. 하루하루는 정말 지옥 같고 힘들지만 뒤돌아보면 시간이 성큼 지남이 야속하다. 아무에게도 슬픈 나의 속마음이 들키고 싶지 않기에 더 의연하게 또 하루를 시작한다….

명절에 처음으로 대전에 있는 부모님께 인사하고 윤서에게도 다녀왔다. 나 빼고 이번 명절은 하늘에서 하하 호호 웃으며 즐겁게 보냈겠지?

나에겐 명절은 너무나 견디기 힘든 빨간 쉼표인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뒤죽박죽인 서랍을 열 생각도 정리할 마음조차 없다. 


새벽에 갑자기 감정을 쏟아내고 창문을 열어보니 차가운 바람이 내 볼을 스쳐 지나간다..

세 명 중 누가 나를 다녀간 걸까?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말을 건넨다. 잘 지내니?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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