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꽤 자주 싸우는 편인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불같이 싸우는 것 만큼 화해도 불같이 한다. 자주 티격태격 하다 보니 서로에 대한 다정한 말 한마디가 어렵기도 하고 아이들 앞에서 가끔 민망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기까지가 나의 생각이었고 시선이었다.
그러다 언니네 가족과 여행을 간 어느날, 그날도 여전히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티격태격을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초등학생 조카가 '부부는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왜 싸우는거야?'라고 물었다고 한다. 언니네는 감정이 상해도 서로 소리를 내지 않는 경우가 많고 특히 아이들 앞에서는 싸우지 않는다고 하니, 조카의 의문이 당연히 커졌을 만도 하다. 초등학생 아이에게 '나쁜 예'를 보여준 것 같아서 어찌나 부끄럽고 미안하던지, 여행 내내 자꾸 그런 부분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급 반성모드로 돌아간 우리는 상당히 부끄러워졌고, 그 부끄러움과 우울감은 우리의 싸움에 대한 마음의 내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시작했던 것 같다. 외면의 싸움을 중지한 것은 서로에 대한 존중감과 배려때문이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조카, 다른 가족,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피해주지 않기 위해, 잘 보이기 위한 겉핥기 식의 해결방안이었다. 싸움을 하지 않기 위해 대화를 하지 않는 것, 그렇게 우리는 여행 내내 조금 어긋난 해결책을 찾았다.
당연히 그 해결책은 통하지 않았다.
나름 5년동안 고생 고생하며 쌓아온 우리만의 방식 (티격태격 서로의 주장을 펼치면서 속이라도 후련한) 과 우리만의 룰 (싸워도 절대 인신공격과 상처주는 말은 하지 않는, 한시간을 넘기지 않고 화해하는, 화해 한 후 긴 대화로 서로를 다시 보듬아주는 이 일련의 과정) 을 뒤도 보지 않고 갖다 버린 채 우리는 모범적인 언니네 부부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머지 않아 맞지 않은 옷을 입는 듯 정말 어색한 부부관계가 되었고, 그가 나와 싸우지 않기 위해 했던 노력들은 (가령 나와의 자리를 피해버린다던지, 표정 없는 얼굴로 영혼없는 리액션만 한 채 대화를 이어가지 않는다던지 하는) 나에게 가장 큰 내상을 입게 해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가 이제 나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구나 하고 꽤 절망했던 것 같다.
다행히 얼마 안가 우리의 진짜 반성이 시작했다.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진짜 반성. 그런데 그건 우리의 싸움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우리의 방식을 휙 쓰레기통에 갖다 버린 나의 행동에 대한 반성이었다.
부끄러웠고, 민망했다.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부모라는 타이틀을 가지는게 너무 무서웠다. 누군가의 비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런 마음들을 인정했다. 모범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훌륭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사랑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인정했다. 온 세상에 틀릴 수는 있지만 우리에게는 어쩌면 맞을수도 있는 그런 방식을 휙 집어던진 행동을 반성했다.
우리는 아직 부드럽고 다정한 대화로 충돌을 풀어내지 못한다. 우리는 카톡으로 싸우는 것도 못한다. 우리는 잠수타는 것은 더더욱 못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여전히 티격태격하고, 삐지고, 째려보고, 버럭했다가, 그리고 또 화해한다. 우리는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싸우는 부모' 라는 타이틀을 가졌지만 그래서 매일 반성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조금씩 더 유해지면서 그럼에도 나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우리 관계의 힘을 믿으면서 그렇게 조금씩 더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