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시절 다녔던 첫번째 회사의 대리님은 결혼에 대해 물으면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결혼? 절대 하지마. 제 무덤 지가 파는거야. 음 아니야 아니야 해 해 해 나만 당할 수 없지." 그 모습이 꽤 좋아보이진 않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눈꼽만큼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결혼하면 그러지 말아야겠다며 약간의 다짐 같은 걸 했었다.
그 후 나는 대리님이 툴툴대던 그 '결혼'을 26살 이란 이른 나이에 했고, 그래서인지 나의 결혼은 늘 친구들에게 관심 대상이었다. 친구들이 종종 묻는다. "결혼 어때? 행복해? 결혼 하면 좋아?" 나의 다짐때문일지 모르겠지만 난 결혼이 좋다고 생각할 때는 물론, 결혼을 괜히 했다고 속상한 날 조차 괜찮다고 에둘러 말하곤 했다.
어릴 적 엄마는 외갓집 모임에 다녀오는 길목엔 늘 아빠의 실수를 꼬집으며 스스로 너무나 속상해 하셨다. 특히 아빠가 술이 과하거나, 너무 자랑만 늘어뜨려놓았다거나, 실수를 한 날에는 너무나도 엄격히 그 실수를 지적했고, 엄마의 화풀이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엄마가 오늘 왜 또 저러시나 하며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이제 엄마가 그 당시 왜 그런 감정을 가졌는지 조금 이해가 된다.
나는 결혼 후 당당해지기도 했지만 가끔 더 당당해지지 못했다. 가끔은 당당하다. 어딜 가도 남편과 두 아이가 있는 나의 가정은 흠 잡을데가 없다는 평이다.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잘했네 잘했어. 이제 다했네. 200점이네' 주로 이런 말 들이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어깨가 괜히 으쓱하곤 한다. 정상 범위라는 기준 속에 들어갔다는 환상일까. 하지만 가끔은 전혀 당당하지 못한다. 지금은 내가 아니라 남편의 행동에 따라 나는 친정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혹여 신랑이 술을 과하게 먹어 실수라도 한 날은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엄마랑 아빠가 외갓집 다녀온 다음 날은 냉전이었던 것 처럼. 가끔 친구들이 저녁에 만나자고 할 때가 있다. 그때 보고싶은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보다 더 속상한 것은 아이 둘을 신랑에게 전적으로 맡기지 못한다고 얘기하는 과정이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조차 이 상황에 당당하지 못한다. 그런 날은 꼭 밖으로 나가지 못하더라도 내 마음은 이미 가족을 등지고 떠나 한참을 떠나있다.
이 당당함과 당당하지 못함은 전적으로 내가 아닌 남편과 아이들에게 달려있기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나는 이것을 '결혼후외상증후군'이라 칭하고 싶은데, 외부에서 받은 이 스트레스는 어쩐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결혼 생활이 좋지만은 않았을 때, 원망과 비난의 화살은 곧장 남편에게 꽂혔다. 그리고 그 마음은 전적으로 내 마음만 다치게 할 뿐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 이제야 문득 그 원망이 오히려 가족이란 울타리에 기대고 숨었던 무력한 나를 향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요즘 들어 내가 느끼는 것은 결혼은 공동체이기에 나는 이 공동체가 잘 굴러가기 위해 애써야 하는 의무는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가정에 충실하고 경제적 활동을 하고 아이들을 잘 돌보고 신랑과 서로 배려하고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그런 류의 의무. 하지만 동시에 가족이라는 공동체와 나를 분리시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잊어서도 안되고, 나의 삶의 작고 큰 가치와 업적과 채무를 가족들에게 전가해서도, 받기만 해서도 안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만큼 하기 싫은 것도 나의 일이라면 전적으로 내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나이고 남편은 남편이고 아이들은 아이들이고 우리는 하나의 얇은 끈으로 묶여져있는 상태라는 것을 정확히 받아들이는 것이 시작이다. 이 시작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며 의지하고 도움을 구할 수는 있지만, 결코 아무도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엄마는 늘 결혼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결혼은 좋은거 반, 나쁜거 반이야. 좋은게 1이 더 많으면 그냥 사는거고 나쁜게 1이 더 많으면 못 사는거지 뭐. 다 똑같아." 만약 내가 행복을 결혼이라는 51에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나의 남은 삶의 49의 행복은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친구의 결혼 소식에 나는 이런 말을 적어 편지를 보냈다. "내가 4년 살아보고 어렴풋이 알게 된건, 행복은 결코 누군가가 나에게 주는게 아니었다는 것인 것 같아. 남편이 된 남자친구가 아무리 잘 해도, 아무리 새로 태어난 조막만한 아이들이 사랑스러워도, 그게 내 행복을 다 채워주진 않더라. 반대로 아무리 결혼이라는, 그리고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이 현실이 구려도, 그게 내 행복을 다 빼앗아 가지도 않더라. 누구보다 너 자신을 위해 너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렇게 살길 바란다. 그리고 넌 충분히 잘 할 수 있을거야."
이것은 사실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결코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환경과 현실 때문에 나의 행복을 맡기지 말자고. 그것과 별개로 나는 충분히 아주 충분히 당당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언젠가 더 현명해질 수는 있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게 나의 결혼의 단상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그리고 또 따로. 각자의 행복한 삶을 지켜내는 것, 그리고 언제나처럼 저녁에 둘러앉아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해주는 것. 그게 전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