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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Oct 07. 2020

제주도 실종 사건

할머니는 동생들이 많다.


어릴 적 할머니를 너무 좋아하던 나에게 아빠가 매번 하시던 말씀이 있었는데, 우리 혜경이는 할머니 돌아가시면 할머니랑 똑같이 생긴 이모할머니 찾아가면 된다고, 막내이모할머니는 아빠와 거의 나이 터울이 없어서 오래 사실거라며 농담삼아 던지곤 하셨다.


할머니와 똑같이 생긴 대구, 경주, 부산, 성주 이모할머니들은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우리 할머니한테 '언니, 잘 지내셨어요.' '언니, 몸은 어때요.' 하며 안부를 묻곤 하였는데, 아빠의 농담 덕인지 잘 안들리는 사투리가 싫지 않았고 이모할머니네 집에 놀러가는 건 늘 설레였다.


그러던 중 어제 이모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언니, 반가운 소식을 전해야겠어요.' 하고 -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할머니한테 그게 왜 반가운 소식이냐고 되물었다. 할머니는 우리 나이 든 사람들끼리 하늘나라에 가면 하는 농담이야 - 하고 말씀하셨다. 어린 딸에게 하늘나라는 뭐고, 돌아가신다는 뭐인지 유치하게 설명하는 것처럼, 할머니도 내가 어린 다섯살쯤 되는 것처럼 그렇게 설명해주셨다.


이모할머니가 괜찮으실까?, 하고 묻자

아프다가 돌아가시기도 하셨고, 자식들 있어서 괜찮다 - 고 말끝을 흐리셨다.


할아버지의 연세는 우리 할머니와 동갑이었다. 친구인 제부의 죽음이 할머니에게는 어떻게 느껴졌을까? 남편을 잃은 이모할머니는 정말 괜찮으신걸까?


제주도 여행 중 잠시 신랑이 연락이 닿지 않았던 밤이 있었다. 


술 마시고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남편이 어느 순간 사라졌고 그 이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스무통이 넘는 전화에도 반응이 없는 그에게 처음에는 화가 났고 나중에는 덜컥 무서워졌다.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 보았지만 칠흑같은 어둠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왠지 화가 난 것 같은 바다에 자칫 공기라도 닿을까 몸을 잔뜩 웅크려 아이를 안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바다가 나의 남편을, 아이의 아빠를 잡아갔을까봐, 정말, 정말 너무 무서웠었다.


결론적으로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차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걸 모르고 호텔 CCTV를 돌리고 경찰까지 불렀던 나는 연달아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한 채 신랑을 데리고 집에 오다 긴장이 풀려 어찌나 울었던지, 그리고 그렇게 우는 나를 보며 신랑이 어찌나 당황하던지,


남편을 찾아나서면서 속으로 수만가지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차라리 사별보다 이혼 당하는게 나으니 제발 죽은것 만은 아니게 해주세요 - 였다. 왜 이 생각이 들었는지도 의문이지만.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겠다는, 내가 유일하게 줄 수 있는 카드였을까.


반가운 소식이라며 슬픈 농담과 함께 전해 온 부고 소식이지만 왜인지 이모할머니의 눈물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나는 아직도 그와 매일 전투를 벌이고 울고 불고 상처주고, 상처를 받더라도 아직은 같이 있고 싶은가 보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말이라도 반가운 소식이라고 전하게 되기 전까지는, 그 전까지는, 그를 아주 조금만 미워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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