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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Apr 30. 2021

[복직일기] 왜 나는 그 지옥에 다시 가고자 하는가?


누구나 그렇듯 나의 워킹맘 시절은 엉망이었고, 그 시절을 하나의 감정으로 표현한다면 나는 이 단어를 고르고 싶다.


'죄책감'


회사 동료에게 나는 좋은 동료가 아니었다. 내 일을 척척 해내는 유능하고 떳떳한, 그래서 함께 지내고 싶은 동료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회사 시절, 특출나게 뛰어나진 않아도 민폐는 끼치지 않았던 성실한 직원 중에 한 명이었지만, 워킹맘이 되자 게다가 둘째를 임신 중인 두돌배기 워킹맘이 되자 나의 업무 능력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배려 차원으로 각종 당직과 출장에서 나를 제외시켜 주었고, 회식은 당연히 안 갈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나에 대한 모든 기대치가 떨어지자, 얼른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기만을 내심 바라는 눈빛도 간혹 느낄 수 있었다. 후한 배려와, 그 속에 거리두기는 그들의 잘못도 아니었고, 나의 잘못도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저 서로에게 일종의 불편함을 주었던 그 공기가 나에겐 엄청난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자책으로 돌아왔었다.


하지만 그 죄책감은 집으로 돌아오면 더욱 심해졌다. 아이가 나를 많이 찾을때는 그때문에 너무 미안하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점차 그 상황을 받아들였는지 나를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정집에서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 실랑이 때문에 길어졌고 그럴때마다 나는 늙어가는 친정 부모님과 나를 거부하는 아이, 할 말이 점점 없어지는 남편과 정돈되지 않은 집 사이에서 갈 곳 잃곤 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계속 미안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 어느 순간 그 책임을 다 나에게 돌려버리게 되는 것, 그렇게 매일 매일을 꾸역 꾸역 살아가는 것, 그게 나의 워킹맘 시절의 기억의 대부분이다.


전업맘 2년 6개월 차. 뱃속에 있던 꼬물이는 어느덧 세살이 되어 어린이집에 공룡 티셔츠를 입고 가고, 나의 워킹맘 시절을 이제는 기억하지 못하는 여섯살 아이는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어울린 날은 활짝, 그렇지 못한 날은 침울하게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소녀가 되었다. 


아이가 등원하는 9시 부터 하원하는 3시 30분까지 나는 어느 날은 열심히 살기도 어느 날은 가만 누워있기도 했다. 2년 6개월이 다 같지는 않았다. 전업맘의 날 또한 워킹맘의 날처럼 똑같이 우울감과 행복감이 반복했다. 오래 누워있는 날들엔 어이없게도 스스로를 또 다시 자책하곤 했다. 어쩌면 나는 워킹맘이어서 힘들었던 것도, 전업맘이어서 힘들었던 것도, 엄마가 되서 힘든 것도 아니라면 어떡해야 할까. 그 모든 것의 답을 모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를 하나 둘 꺼내보기로 하였다. 이왕 힘들고 이왕 자책할거면 부딪히고 돈 벌어서 힘든게 낫지 않을까... 하면서. 


어디에도 파라다이스는 없다. 

그러니 그 무엇을 선택해도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복직을 결정했다.

그 어떤 큰 이유도, 큰 포부도, 큰 기대도 없이. (아, 누가 차려주는 점심, 그거 하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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