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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Feb 19. 2022

35주차 셋째 임신 기록

1. 돌이켜보면 첫째 임신이 가장 쉬었던 것 같기도. 셋째라고 해서 여유롭다거나, 걱정이 전혀 안된다거나 그렇진 않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가 가장 무모하고 용감했던걸까. 2016년부터 지금까지, 대략 7년간 몇 번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유산을 겪어보고 난 후 아마도 내 인생 마지막이라 생각하는 이 임신도 여전히 무섭고, 사실은 더 무섭다. 스믈스믈 올라오는 무통 없이 긴급분만으로 진행되었던 둘째 때의 고통. 그때 정말 아팠었는데. 그럼에도 아이가 내 뱃속에 있는 이 신기함. 뱀이 한마리 또아리를 튼 것 같은 태동. 한 몸 속에서 두 개의 심장이 뛰는 유일하게 경이로운 순간. 이 순간을 내 인생 마지막으로 겪는다는 생각을 하면, 사실 이런 걱정과 두려움, 불편함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그래서 기록해야겠다. 이 마지막 순간들을.


2. 셋째의 태명은 기쁨이. 지난 임신 시절 기록도 없을뿐더러, 기억력이 매우 저조한 탓에 우리 두 아이들의 태동과 나의 몸 상태에 대해 크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특히 태동이 큰 기억은 없는지라 다른 아이들처럼 발로 뻥뻥 차고, 유난히 활발하고, 그래서 태동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이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기쁨이 또한 그렇다. 발로 뻥뻥 차는 경우는 거의 없다만 그래도 꾸준히 존재감을 알 수 있도록 능구렁이처럼 꿈틀 꿈틀 거린다. 이제 막달이 되어 눈으로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남편과 두 아이들은 각각 제 살 길을 살기에 바빠서 그 신기한 광경은 오롯이 나만 느끼고 있다. 그래, 기쁨아 이건 나와 너와의 작은 비밀로 해두자. 엄마 뱃속에서 느긋하게 놀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 왠지 너는 뭐든지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아이가 아닐까 상상하며 기다린단다.


3. 아이의 몸무게는 34주 기준 2.5kg 였다. 다리길이가 조금 길다하였고, 머리둘레는 보통. 첫째가 41주 3.68kg(여아)로 태어났고, 둘째가 39주 3.6kg(남아)로 태어났으니, 이 아이도 39주에서 40주 사이, 3.7~8kg 정도 선이 되지 않을까 싶다. 셋째 가지고 처음 안 사실인데 3.5kg 이상이면 의학적으로 볼 땐 난산이라고 한다. 그래도 4kg 아닌게 어디야 하고 늘 안도했었는데, 정말 모르는 게 약이었다. 지금 고민은 회음부열상주사를 맞을지 안 맞을지, 제대혈을 할 지 말 지, 마지막으로 분만 병원을 믿고 갈 지 말 지, 그런 것들인데 그런 것들로 자꾸 맘카페를 몇 시간 동안 들여다보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래서 애써 무시하고 싶어 글로 털어논다. 그래 어떤 선택을 하든 다 지나갈거야. 무사히. 


4. 배가 부르면 불편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그 중 가끔 내 배의 존재를 까먹는 것도 한몫한다. 지금 사는 집은 베란다가 좁아 세탁기와 건조기를 따로 놓았는데 쪼그리고 건조기 사이를 지나 세탁기로 가야할 때마다 배가 걸린다. 옆으로 가도 앞으로 가도 불편한 공간이라 이 거대한 몸을 어찌 돌릴지 몰라 우왕좌왕하며 빨래를 한움쿰 지고 세탁기로 갈 때 마다 내 모습이 웃기다. 신종문콕이랄까. 화장실이나 방문을 나올 때 배가 있는지 몰라 방문 손잡이에 배가 딱 걸리면서 찔리거나 맞을 때가 있는데, 그 아픔은 신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 고작 이깟것에 이런 수치를 당하다니. 이런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난 이 배가 너무 사랑스럽다. 옷을 입으면 툭 튀어나와 배 밑까지 옷이 안가려져서 슬슬 시려운 느낌까지도, 마지막 이 배부름에 킥킥 웃을 때가 많다. 그 커다란 배와 능구렁이같은 아이의 움직임을 느끼자니 이건 정말 막달 임산부의 특권 그리고 아이를 가지고 낳을 수 있는 젊음의 특권이라 자부한다.


5. 이사를 앞두고 있다. 어쩌다보니 37주에 이사를 해 첫째, 둘째를 곧바로 새로운 원에 적응시키고 1~2주만에 빠르게 짐 정리를 하고 출산 준비도 해야 한다. 적어도 아기가 누울 공간은 마련해놔야 하는데, 마음은 복잡하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그냥 마음만 풍선처럼 둥둥 떠다닌다. 주거 공간의 중요함을 잘 몰랐었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주부의 역할로 엄마의 역할로 몇 년 살다 보니 나도 어느새 몇 평이래, 향은 어떻대, 학교는 가깝대, 인프라는 어떻고, 공간은 잘 빠졌을까, 이런 질문과 평가가 낯설지 않게 되었다. 좋든, 좋지 않든 어쨌든 그렇게 되었다. 최근엔 더더욱 느끼는 중인데, 육아엔 쾌적한 주거 환경이 아주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좁은 집에 많은 식구들 울고 있는 아이, 너저분한 장난감, 쾌쾌한 먼지들. 이런 환경에서 아이와 함께 눈을 맞추며 자상하게 쎄쎄쎄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나는 아니였구나,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 난 속물이었다. 그래서 셋째 육아는 첫째, 둘째보다 외롭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쾌적한 곳에 로봇청소기와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나의 육아우울증을 줄여줄 수 있다면, 심각한 대출이자와 관리비 또한 눈감아줄 의향이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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