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3일 (목요일), 장맛비
1. 최근에 세계 최고급 참치회를 맛볼 기회가 있었다. 원양수산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에서 고위경영자로 일하고 계시는 L 선배님이 직접 공수해 오신 참치였다. “상위 0.4%” 수준의 품질이라고 설명하시는데, 어떻게 그런 구체적인 숫자가 나오는지는 좀 궁금했지만 그저 ‘정말 정말 귀하고 좋은 참치인 모양이다’라고 생각하며 먹었다. 설명해 주신 방법대로 고추냉이를 잔뜩 얹은 다음 간장을 살짝 찍어먹었는데, 과연 고추냉이의 매운맛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고기가 입안에서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린 후 고소함만이 가득 남는 느낌이었다.
2.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또 다른 선배님이 L 선배님의 예민한 미각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예전에도 L 선배님이 직접 공수해 주신 참치를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너무 맛있게 먹으며 특별한 참치의 고급스러운 풍미에 대해 다들 감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 늦게 도착한 L 선배님이 회 한 점을 입에 넣자마자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표정을 짓더니 지배인을 불러 ‘이건 내가 가져온 참치가 아니다’라고 하시더라는 것이다. 잠시 후 사실관계를 확인한 지배인은 큰 실수를 범했다며 깊이 사과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맛있게 즐기고 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직 미처 다 먹지 못한 맛있는 참치가 물려지는 것이 너무 아깝더라고 해서 나를 포함한 모두가 빵 터졌다.
3. 특별한 감각을 가진 분들을 볼 때마다 참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 그런 걸 다 구분해 낼 수가 있지? 오래전에 보았던 한 TV 프로그램에서는 박칼린이라는 뮤지컬 음악감독이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를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미세한 소리의 차이를 그야말로 귀신같이 잡아내곤 했었는데 그 모습도 참 경이로웠다. 그는 또 다른 방송에서 "저는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을 잘 듣는 사람이에요. 제가 잘하는 건 듣기예요. 그래서 좋지 않은 소리를 들으면 정말 힘들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4. 내가 미국에서 유학 중에 인턴십을 하면서 3개월 내내 매일 저녁을 ‘3분카레’로 해결했다는 것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꽤 유명해진 일화다. 그때 나는 ‘3분카레’를 부엌 캐비닛에 가득 채워놓고 매일 퇴근하면 하나씩 꺼내 먹었는데 3개월 동안 한 번도 지겹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감각이 둔한 덕분에 웬만한 음식은 다 맛있고, 웬만한 연주는 다 감동적이고, 웬만한 드라마는 다 재미있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분들은 그 덕분에 최고의 전문가 경지에 오른 것이긴 하겠지만, 너무 예민한 감각은 사람이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둔해서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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