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이 형성되는 데는 0.1초 밖에 안 걸린다고 한다. 3초가 걸린다고 하는 학자도 있고 30초 정도 걸린다고 하는 학자도 있긴 하다. 누구 말이 맞건 간에 사람은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상대방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는 얘기다. 이는 우리 뇌 속의 편도체와 후대상회(PCC: posterior cingulate cortex)라는 부위가 순간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인데, 이들 뇌 부위는 특히 두 가지 관점으로 첫인상을 판단한다고 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위협적인 존재인지 아닌지’와 ‘능력이 있는 존재인지 아닌지’.
결국 사람에 대한 첫인상은 다음의 네 가지 유형 중 하나로 나눠진다는 말이 된다.
능력이 있고 차가운 사람: 경계 대상이다.
능력은 없으나 따뜻한 사람: 호구의 가능성이 있다.
능력이 있고 따뜻한 사람: 그런 사람도 있어?
능력이 없고 차가운 사람: 밥맛이다.
오늘 업계에 계시는 어떤 분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첫인상 때문에 오해를 받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생각해 보니 그런 경우들이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1. 첫 직장 C사에 입사했을 때, 선배사원들은 이력서에 기재된 나의 성적에 대한 소문(?)만 듣고 입사도 하기 전부터 이미 “함수석”이라는 별명까지 지어 두었었다. ‘공부벌레에 사교성은 빵점’ 일 것 같은 첫인상은 회사생활 몇 달 뒤에 깨방정, 허당 이미지로 바뀌었지만.
2. 글로벌 기업 L사의 미국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으로 발령받아 왔을 때는 “엘리트 ‘성골(신라시대 직계 왕족)’ 출신의 까만 머리 외국인이 낙하산으로 내려온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나중에 그런 오해는 “알고 보니 우리보다 더 된장 같다”는 평으로 바뀌었다.
3. 동남아 지사의 대표로 가게 되었을 때는 현지 직원들 사이에서 ‘무서운 한국인 사장이 온다’며 걱정의 기운이 감돌았었다고 한다. 하필 그때 나왔던 신문기사의 제목도 “Aggressive Korean이 온다”였다. 일부 직원들에게는 엄하게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나중에는 ‘엄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유(柔)한 것 아니냐’는 평을 듣기도 했다.
한번 형성된 첫인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바꾸려면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초두효과(Primacy Effect)’ 때문이다. 그러니 할 수만 있다면 애초에 좋은 첫인상을 주는 것이 최선이다.
좋은 첫인상을 만드는 방법은 찾아보면 많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어디 뜻대로 되는 쉬운 일인가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제일 쉽고 간단한 방법은 표정을 밝게 하는 것이다. 우리 몸은 억지로 미소를 짓기만 해도 뇌가 ‘행복한 상태’라고 착각을 하게 되고 이는 긍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를 바라보는 상대방도 나를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과장되지 않은 자신의 진짜 모습은 꾸준하고 일관성 있게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과거에 팀원들로부터 받았던 소위 ‘롤링 페이퍼’는 지금도 사무실의 내 책상 한켠에 고이 간직되고 있다. 특히 한 팀원이 남긴 아래의 말은 가끔 나 스스로에게 격려가 필요하거나 초심을 살리고 싶을 때 들여다보게 되곤 한다.
“처음 태진님을 뵈었을 때, 왠지 엄하고 딱딱하실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도 많으시고 팀원들을 각자 한 ‘사람’으로서 아껴주시는 게 느껴져서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태진님을 필두로 더욱 사람 냄새나는 팀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는 아무래도 무표정하게 있으면 무서워 보이기 쉬운 얼굴인 모양이다. 그래서 가끔씩 멈춰서 지금 내 입꼬리가 내려가 있거나 입술이 튀어나와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곤 한다. 일부러 이로 펜을 무는 것을 상상하며 웃는 표정을 지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나는 사람들 개개인을 관심을 갖고 대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혹시 나를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아! 그리고 나도 다른 사람에 대한 섣부른 첫인상에 휘둘리고 있지는 않은지도 살피고 경계해야 한다. 그것 역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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