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어갑니다. 아시아에 최초로 진출하는 외국계 글로벌 기업에서 한국지역을 맡아 법인을 설립하는 일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은 아무래도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것과 더불어서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후보자를 발굴하고 나면, 저뿐만 아니라 본사의 인사담당자와 각 부서별 책임자들이 후보자와 면접을 봅니다. 그런 다음 나중에 모두가 함께 모여서 각 후보자에 대한 느낌을 서로 비교해 가며 누구를 최종 후보자로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던 중에 한 번은 본사의 고위급 임원인 N이 나에게 하소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경험이 많고 노련한 리더였지만 한국사람을 상대해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사람을 평가하는데 자신의 판단력을 얼마나 믿어도 될지 점점 조심스러워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N은 다른 문화권의 후보자들과는 달리 한국인 후보자들과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술술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대개 한국인 후보자는 말이 그리 많지 않고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는 편이기 때문에 자신이 이것저것 질문을 통해 계속 무언가를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자연히 면접을 보면서 에너지 소모도 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칫 후보자의 약점으로 느껴지는 모습들이 사실은 언어 혹은 문화적인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후보자의 고유한 성향 때문인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래도 요즘 글로벌 기업에 다니는 한국 직원들은 업무 하는 방식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서구화되어서 영어도 유창할 뿐만 아니라 직급의 높낮음과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자신 있게 표현하는 소위 "speak up"도 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회의석상에서 ‘말하기’보다는 ‘듣기’가 편하고,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기보다는 묻는 질문에만 대답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글로벌 회사에서는 대개 적극적이고 자신감 넘치며 말 잘하는 후보자들이 더 좋은 평가를 받기가 쉽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글로벌 기업의 고위직에 한국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N 역시도 외향적인 성향이거나 자신감 넘치게 말을 잘하는 후보자들에게 좀 더 좋은 평가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감(confidence)이 높은 사람을 역량(competence)이 높은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반대로 자신감이 부족해 보이는 것을 (lack of confidence)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lack of competence) 오해하는 것도 곤란합니다. 역량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감이 높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해서 역량이 뛰어날 것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역량이 부족한데도 자신감이 높은 사람은 오히려 조직에 해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그런 사람이 리더의 자리에 있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남들의 말을 경청하기보다 자기 이야기만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리더의 자리에 있고, 그 사람이 스스로 틀릴 수 있거나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 그저 자신감만 넘친다면 그 조직의 구성원들은 더욱더 목소리를 잃고, 조직은 점점 더 산으로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는 것은 글로벌 시대의 인재라면 꼭 갖춰야 할 필수덕목입니다. 자신이 능력에 비해 조직 내에서 인정을 덜 받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자신의 의사소통 능력을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평소에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편인지, 아니면 ‘튀지 않으려고’ 누군가가 묻지 않으면 대개 입을 닫고 있으면서 그저 ’조용히 묻어가는‘ 성향은 아닌지 생각해 보고 이런 면에서 부족함이 있다면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에도 열려있는지, 그리고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견을 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격려하는지도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훌륭한 인재, 좋은 리더는 뛰어난 실력으로 뒷받침된 자신감과 더불어서, 최선의 결과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겸손함을 함께 갖추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024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