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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태진 Jun 07. 2024

경력관리는 이삿짐 정리하듯

서울로 이사한 지 2주가 지났다. 서울의 높은 집값 탓에 평수를 줄여서 이사하다 보니 처음엔 좁은 방마다 물건들이 가득해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꼬박 2주가 지나고서야 이제 겨우 '그래도 좀 살만하다' 싶을 정도로 정리가 된 느낌이다.


지난 2주간 틈날 때마다 짐 정리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1. 잘 버려야 한다.

“공간”은 소중한 “자원”이다. 집이 좁다면 특히 더욱 그러하다. 이 귀하고 한정된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우선 소중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쓸데없는 물건들은 과감하게 잘 버려야 한다. ‘정리 컨설턴트’로 유명한 일본의 곤도마리에가 한 명언,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지 않는 것들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말이 기준이 될 수 있다.


2. 잘 분류해야 한다.

아무리 정리를 잘하고 살아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뒤죽박죽이 될 수 있다. 비슷한 물품들을 최대한 일목요연하게 분류한 다음 한 장소에 모으기만 해도 소중한 공간이 비효율적으로 낭비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3. 잘 수납해야 한다. (때론 창의적으로)

집이 넓다면 물건을 주르륵 펼쳐놓고 살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면 물건을 잘 수납해야 한다. 수납공간이 부족하다면 비어있는 숨은 공간을 잘 찾아 활용하는 창의력이 필요하다. 이번에 냉장고 옆의 자투리 공간에 생수병을 가로로 차곡차곡 쌓고 나서 얼마나 흐뭇했는지 모른다.


4. 잘 기록해야 한다.

좁은 집에서 테트리스 쌓듯이 빈 공간을 구석구석 채우다 보면 자칫 나중에 물건을 어디다 뒀는지 기억을 못 해서 고생할 수 있다. 어떤 것은 다음번 이사할 때까지 영영 구경도 못할 수도 있다. 물건들의 위치를 쉽게 알아낼 수 있도록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해 두면 도움이 된다. 나는 자주 쓰는 핸드폰 메모장에 수납한 물품과 장소를 사진으로 찍고 이름을 함께 적어둔다. 필요할 땐 이름만 치면 무엇을 어디다 뒀는지 바로 알 수 있다.


5. 자기 물건은 자기가 정리해야 한다.

한 번은 엄마 집에 갔다가 어수선하게 물건들이 널려있는 것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집안을 싹 정리해 드린 적이 있다. 말끔하게 정리된 집을 보면서 나는 오랜만에 효도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엄마는 예전에 어질러져 있던 무질서함 속에서도 나름 당신만의 질서가 있었다며 못마땅해하셨다. 그리고 상태는 하루도 못 가서 원상복구(?) 되었다. 아무리 잘 정리한다 한들 정작 사용자의 생활방식에 맞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다. 자기가 쓰는 물건은 자기가 정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짐 정리의 노하우는 경력관리나 사회생활에도 적용된다.


첫째, ‘공간’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시간’ 역시 한정적인 소중한 자원이다. 따라서 무엇으로 이 소중한 시간을 채워갈 것인가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 간혹 이력서를 받아보면 연결고리를 찾기 힘든 너무 다양한 경험들로 경력의 상당 부분을 소비한 사람들을 보곤 한다. 물론 ‘무엇이 중요한지’는 개개인의 철학과 선택의 문제이다. 핵심은 자신에게 덜 중요한 것들은 과감하게 정리함으로써 중요한 것에 시간을 더 많이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공간과 물품을 용도별로 잘 분류하고 뒤섞이지 않게 해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듯이 우리의 시간 역시 잘 구분해서 쓸 필요가 있다. 일 할 때는 일하고, 쉴 때는 쉬어야 한다는 말이다. 일 하면서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다른 생각을 하거나, 퇴근 후 혹은 주말에 가족과 있으면서도 찔끔찔끔 회사 메일을 열어보는 것은 시간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낭비하는 것이다. 일할 때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간혹 자신은 주말에도 휴가 때도 잘 못 쉰다는 사람들도 그리 유능해 보이지 않는다.


셋째, 기존의 사고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인 사고는  문제해결(problem-solving)의 중요한 열쇠다. 어떤 업무는 창의성보다는 정해진 원칙에 따라 정확하게 반복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지만, 대개 우리가 맞닥뜨리는 많은 상황은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늘 ‘하던 대로 습관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지금 있는 상태보다 큰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넷째, 회사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기록을 잘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회사는 말로만 때울 수 있는 곳이 아니고 많은 과정과 결과가 문서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계가 잘 갖춰진 회사들은 문서를 만들고 보관하는 방법에 대한 규칙을 만들고 또 이를 잘 지키는지를 관리하는 부서를 따로 갖고 있기도 하다. 만일 자신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문서로 정리해서 표현하는데 익숙지 않다면 지금 당장 일기 쓰는 습관이라도 들일 필요가 있다.


끝으로, 자기 물건들은 자기가 정리해야 하듯이 자기 인생, 자기 경력은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이전 글들에서도 몇 번 말했듯이 경력을 잘 ’키워주는‘ 회사는 없다. 경력을 자신이 주도적으로 잘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 갖춰진 회사’가 있을 뿐이다. 그 환경을 잘 활용하는 것은 각자 스스로의 몫이다.




고작 이삿짐 풀면서 너무 쓸데없이 심오한 생각을 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더 큰 집으로 이사했더라면 굳이 안 했어도 될 생각들이다. 이참에 이런저런 교훈을 얻고 되새겨 본 것은 좋지만, 사실 다음에 다시 이사하게 된다면 그때는 더 작은 집이 아니라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수납 걱정 없이 물건들을 대충 여기저기 널브러뜨려놓고 게으름 부려도 거슬리지 않을 정도가 되는 집 말이다.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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