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가 된 예전 직원을 만나고 나서 드는 생각들
회사에서 인재를 모집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이런 만남에서 종종 듣는 질문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해당 분야에서의 경력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관한 것이다. 주로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느끼는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할 때가 많다.
나는 동일한 직무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특수한 전문 분야의 경우는 예외이다.) 오히려 나는 경력이나 스펙보다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 자질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첫째, 겸손한가? 질문하고 도움을 구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가?
어떤 일을 해 보았고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칫 자신의 제한된 경험과 사고의 틀 안에 갇힐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경험이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차라리 내가 잘 모른다는 전제하에 다양한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그들에게 겸손하게 질문하며 조언을 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정보를 모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점점 만나는 사람의 폭을 넓히고,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정보들을 하나하나 엮어가다 보면 어느새 누구도 갖지 못하는 자신만의 통찰과 큰 그림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남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돌파구나 해결책을 발견할 수도 있다.
둘째, 시행착오를 포용하는가? 빨리 배우는가?
많은 사람들은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준비되었다고 느끼기 전에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방법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빠르게 시도해 보고 실수를 통해 배운 것들은 다시 새로운 시도에 반영하면서 최적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이것은 "팔친스키 3대 원칙 (3 Palchinsky Principles)"이라고 알려진 문제대처법과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1.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시도해 볼 것, 2. 단, 실패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규모로 시도할 것, 3. 결과에 대해 피드백을 구하고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을 것.
셋째, 자기 주도적인가? 자가발전 할 줄 아는가?
'주인의식을 가져라'라는 말은 꼰대들의 표어처럼 취급되는 요즘이다. '주인의식이요? 저는 회사 주인이 아닌데요?'라는 반응은 어찌 보면 일리가 있는 듯도 하다. 하지만 최인아 책방의 대표 최인아 님은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에서 '내가 회사의 주인이어서가 아니라 내 일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인의식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인의식'이라는 말이 듣기 거슬린다면 '자기 주도성'이라는 말로 대체해도 좋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일을 수동적으로 하는 사람과, '이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챙기는 사람은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겠다', '시키는 일만 하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재 있는 자리에서 더 이상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 자기 주도적이고 자가발전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인재이다.
옛 부하직원 P는 이런 면에서 훌륭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에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그리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다. 학벌이나 경력도 그저 평범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질문하고 진심으로 경청하며 티끌 같은 정보들을 모으고 엮어서 본인만의 거대한 빅데이터를 구축하는데 탁월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주변사람들을 밝게 만드는 재주도 있었고 스스로를 낮추거나 희화화하는 것을 불편해하지도 않았다.
그가 일하는 방식이 철저하게 현장중심적이고 실험적이다 보니 때로는 좌충우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를 '전략적이지 않다'며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전략을 책으로 배운 소위 "북 스마트(Book Smart)" 한 사람보다, 철저하게 현장중심적이고 "스트리트 스마트(Street Smart)"한 P의 의견이나 방식에 종종 더 믿음이 가곤 했다.
내가 회사를 떠난 이후에 P도 자기 사업을 시작해 보겠다며 회사를 떠나 독립하였다. 가끔씩 만날 때면 그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나에게 이야기하며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딱히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없었다. 오히려 그가 몸에 밴 부지런함과 적극성, 겸손함과 실행력을 통해 스스로 한걸음 한걸음 길을 찾아나가는 것에 매번 감탄하며 그가 하루빨리 자리 잡기를 바랄 뿐이었다.
최근에 오랜만에 다시 만난 P는 이제 어엿한 사업가의 면모가 풍겼다. 오랫동안 공들였던 큰 거래처를 따 내면서 사업이 안정화에 접어들었고, 이를 발판으로 새로운 영역으로의 사업확장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그가 들려준 좋은 소식에 마음이 흐뭇하면서 그런 좋은 인재와 함께 일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제2, 제3의 P를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야겠다.
(2024년 4월)